“맛이… 식당 목적이 아닌 것 같다” 中 비밀경찰 한국 거점 의혹 중식당 가보니…

  • 주간동아
  • 입력 2022년 12월 31일 11시 43분


국제인권단체 “한국에서 中 비밀경찰서 운영”… 中 “해외 경찰서 없어”

“이 음식 이름은 뭔가요?”

“짜장면과 짬뽕은 인당 1그릇씩 나오는 구성인가요?”

메뉴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며 종업원들에게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중국 억양이 담긴 “잘 몰라요”뿐이었다. 개중에는 한국말이 서툴러 주문을 피하거나 다른 직원을 부르는 종업원도 있었다. 식당을 방문한 한 외국인 커플은 종업원과 말이 통하지 않아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2022년 12월 28일 저녁, 식당이 한창 붐빌 ‘연말 대목 시즌’이지만 1시간여 동안 세 그룹의 중국인 손님만 식사를 했다. 이들은 종업원과 구면인 듯 중국어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곳은 최근 ‘비밀경찰서 논란’이 제기된 중식당 ‘동방명주’다.

2022년 12월 24일 서울 송파구 한 중식당 동방명주. [뉴스1]
2022년 12월 24일 서울 송파구 한 중식당 동방명주. [뉴스1]

“OCSC, 비밀경찰 연관”
한국에 중국 비밀경찰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 중식당이 주요 거점으로 의심받고 있다. 해당 중식당은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장을 맡은 왕해군 씨가 2018년 개업한 곳이다. ‘한강 뷰’를 보면서 식사할 수 있다는 매력에 많은 사람이 찾았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네이버에서 해당 음식점 이름을 검색하면 “중국인 종업원들이 한국말이 서툴러 소통이 안 된다” “음식 맛이 뭔가 이상하다”는 후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누리꾼이 2019년에 남긴 “식당을 목적으로 식당을 연 곳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는 방문 후기가 뒤늦게 조명받기도 했다.

국제인권단체가 왕 씨와 관련된 한 단체를 ‘비밀경찰 연관 조직’이라고 폭로하면서 논란은 급물살을 탔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2022년 12월 5일 “중국이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비밀경찰서를 한국과 일본 등 최소 53개국에서 102곳 이상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공개한 것이다. 110은 중국의 경찰 신고번호로 한국의 112와 비슷하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한국의 경우 중국 장쑤성 난퉁시 공안국 산하 조직 1곳이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중식당 대표인 왕 씨가 주임을 맡은 한 단체를 비밀경찰서 연관 조직으로 꼽았다. 화교를 대상으로 민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 ‘오버시스 차이니즈 서비스센터(Overseas Chinese Service Center·OCSC)’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OCSC를 ‘경찰과 연결된 다리(bridges for police linkage)’에 비유했다.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에 따르면 중국 비밀경찰서는 각국에서 반체제 인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도록 압박하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 세르비아 등 세계 각지에서 중국인이 비밀경찰로부터 협박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주재국 승인 없이 공식 외교공관이 아닌 곳에서 영사 업무를 하는 것은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위반이다. 반면 중국 정부는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은 외국에서 생활하는 중국인을 위해 행정서비스를 지원하는 단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OCSC 본점은 왕 씨의 부인이 대표를 지냈던 서울 구로구 소재의 한 여행사와 주소지가 같다. OCSC 지점 역시 현재 왕 씨의 부인이 대표를 맡은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 회사와 동일한 곳에 위치했다. 다만 해당 장소에는 OCSC와 관련된 간판 같은 흔적은 없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앞선 여행사마저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비밀경찰서 의혹을 폭로한 직후 해산됐다.
중국 정부 개입설 솔솔
논란이 커지자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2022년 12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먼저 사실관계 등이 파악돼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해당 입장이 나온 직후 “중국의 해외 경찰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등 유관기관이 관련 방첩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방첩당국은 “관련 사항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왕 씨와 중국 정부의 관계도 관심을 끈다. 1978년생인 왕 씨는 2004년 사업비자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후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구로구 가리봉동과 경기 부천시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했고, 이후 사업체를 늘려 이른 나이에 음식점, 여행사 대표는 물론, 중국재한교민협회 부회장 등 여러 직함을 맡았다. 지금도 배우자와 함께 요식업, 미디어업 등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 및 관리하고 있다. 왕 씨는 재한중국인 사회에서 큰손으로 유명하다. 2010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각종 행사 후원금과 초대비로 한 달에 평균 500만 원 이상 지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밀경찰서 논란이 터지면서 “단순히 성공한 사업가로만 알았던 왕 씨의 배후에 중국 당국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외에 거주하는 화교를 위한 공식 웹사이트 ‘중국교망(中???)’에 따르면 왕 씨는 중식당 개점 직전 해인 2017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 참석했다. 중식당 개점 전부터 중국 정부 당국과 교류를 이어온 것이다. 정협은 중국 최고 정책자문기구로, 전국인민대표회의와 함께 양회(兩會)로 불린다.

중국교망은 2017년 신화통신 기사를 인용해 “국무원 해외사무소는 왕 씨에게 중국 음식 번영 계획 등 8개의 해외 베니핏 프로젝트를 제안해 새로운 지원과 추진력을 부여했고, 정통 중식당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고도 전했다. 중식당 사업 계획 단계부터 중국 정부가 개입했을 개연성이 있는 셈이다.

2022년 12월 28일 중식당 동방명주 전광판에 관련 의혹을 부인하는 글을 띄웠다. [뉴스1]
2022년 12월 28일 중식당 동방명주 전광판에 관련 의혹을 부인하는 글을 띄웠다. [뉴스1]

중국 공영방송사 자회사와 사무실 주소 같아
왕 씨가 운영하는 중식당이 줄곧 적자에 시달렸음에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기업신용정보 제공기관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해당 중식당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2억2991만 원, 6억8640만 원 상당의 적자를 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음식점 매출이 급감했고 그 상황이 지속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개점 이후 적자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매출 구조 또한 특이하다. 3층짜리 대형 음식점임에도 2018년, 2019년 매출이 각각 1억2618만 원, 2억6407만 원에 그쳤다. 해당 음식점이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점을 고려할 때 일일 평균 매출액은 각각 34만 원, 72만 원에 불과하다.

왕 씨와 중국 정부의 연결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해당 중식당은 2020년 국회 인근에 지점을 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 공영방송사와 사무실을 공유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로 나왔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해당 중식당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한 빌딩 9층에 지점을 두고 있는데 기자가 12월 27일 해당 장소를 방문한 결과 중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같은 층에 자리한 중국 관영매체 중국중앙TV(CCTV) 자회사 사무실에는 한 미디어업체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미디어업체 대표는 왕 씨의 아내로, 그 역시 비밀경찰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중식당 대표를 2018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지낸 바 있다. 건물 관계자는 “(9층에는) 중국 사람들이 (일을) 하는 곳일 뿐, 중국집을 따로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왕 씨는 비밀경찰서 의혹이 연이어 제기되자 2022년 12월 27일 중식당 옥외 전광판을 통해 “부패 기업이 돈으로 여론을 통제하고 한국 국민을 희롱하고 있다”며 언론 보도를 정면 비판했다. 왕 씨는 다음 날 전광판을 통해 “모든 왜곡, 오류 및 거짓보도는 기필코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도 냈다.

왕 씨는 12월 29일 중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왕 씨는 “(본인은) 대한민국에 20년 가까이 거주했고 공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중수교 30주년 행사도 동방명주에서 주최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방명주는 정상적 영업소”라고 말했다. 왕 씨는 이어 “이유 없는 비밀경찰서 압박이 부당하다”며 자신들을 둘러싼 논란에 선을 그었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71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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