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8일 네이버 카페 ‘대ㅅ하우징 김ㄷ성 전세 임차인 모임’에는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2800여 건 게시돼 있었다. 이 카페 가입자는 이른바 ‘빌라왕’으로 불리던 김 모 씨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사람들이다. 김 씨는 1139채의 빌라, 오피스텔 등을 보유하고 있다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2022년 10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 씨가 소유했던 주택 가운데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보증보험)에 가입된 것은 극소수다. 그중에도 선순위채권이 있는 곳이 많아 피해 임차인들은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은 전세보증금을 한순간에 날릴 위기에 처했다.
김 씨를 시작으로 세입자의 보증금을 떼먹은 전세사기 사례가 연일 적발되면서 예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100억 원 이상 피해를 일으킨 제2, 제3의 빌라왕만 5명이다. 이들이 소유한 주택은 총 8000여 채, 피해액은 약 1600억 원으로 알려졌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전세가가 급락해 ‘무자본 갭투자’를 해온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된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2020년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제’의 만료(2년+2년)가 도래하는 2024년 전후에 전세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전세사기를 방지하려면 계약 시 임차인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적정 전세가, 근저당권, 체납세금 확인해야”
전문가들은 “계약 전 단계에서부터 ‘깡통 전세’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택의 적정 전세가, 등기부등본상 근저당권 설정 여부, 임대인의 세금완납증명서 등을 확인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빌라왕 김 씨는 건축주, 부동산공인중개사 등과 담합해 시세 정보가 부족한 빌라 등을 매입한 뒤 매매가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를 놓는 수법을 썼다. 이렇게 남긴 차익으로 다시 주택을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를 계속했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선 대부분 주택에 근저당권이 과도하게 설정돼 있거나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을 체납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위 세 가지 사항을 우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는 “등기부등본이 지저분한 매물은 웬만하면 계약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래도 꼭 들어가야겠다면 ‘근저당이 있으니 보증금을 깎아달라’고 임대인과 협상하거나 차라리 월세 계약으로 전환해 보증금 액수를 최대한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빌라왕 사례처럼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 밀린 세금을 최우선으로 변제하고 남은 금액에서 보증금을 돌려받게 된다”며 체납세금 확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세금완납증명서 공개는 전적으로 임대인 의지에 달렸다. 그러나 최근 국회를 통과한 ‘국세징수법 개정안’에 따르면 2023년 4월부터는 임차인이 임대인의 체납 정보를 전국 세무서에서 자유롭게 조회할 수 있다.
주택 계약 경험 부족한 2030… 동행인 필수
계약하려는 매물이 근린생활시설인지, 개인이 아닌 법인과 계약하는 데 따른 주의사항은 무엇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빌라왕 김 씨 일당은 몇몇 근린생활시설(상가)을 불법 증축한 뒤 주택으로 속여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맺었다. 개인-법인 소유 주택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 세입자가 김 씨가 설립한 법인과 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근린생활시설과 법인 소유 매물 모두 보증보험 가입에 제한(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지 않고 임대사업자가 아니어야 함)이 있다는 점이다. 같은 피해자여도 보증보험에 가입된 주택 임차인은 추후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근린생활시설과 법인 소유 매물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 정부가 내놓은 피해자 구제 방안 가운데 하나인 전세대출 만기 연장도 두 가지에 해당하면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밝혀진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부분 2030세대다.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 주택 계약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악성 임대인, 전세사기 공모자들의 주요 타깃이 됐다. 이들 중에는 계약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음에도 한 패거리인 부동산공인중개사의 설득에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계약할 땐 반드시 주택 거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과 동행하라”고 조언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가장 좋은 방법은 계약하려는 매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동산공인중개사를 따로 구해 계약 때 동석하는 것”이라며 “10만 원 정도 수수료만 지불하면 계약 내용에 위험 요소가 없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점검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증보험 가입도 중요하다. 계약서 특약 사항에 임대인의 보증보험 가입 의무를 명시해야 하는 것은 물론, 미가입이 의심되는 경우 임차인이 직접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정부에 등록된 주택임대사업자는 의무적으로 보증보험을 가입해야 한다. 임대인이 75%, 임차인이 25%의 보증보험료를 납부하게 돼 있다. 하지만 빌라왕 김 씨는 보증보험에 가입하겠다고 하고 가입하지 않거나, 전부가 아닌 일부만 가입하는 방식으로 눈속임을 해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비용 부담이 있긴 하지만 임차인이 보험료 전액을 납부하고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방법도 있다”며 “0.1~0.2%대로 형성된 보험료율을 고려하면 보증금 2억 원 기준 연간 약 20만~40만 원 보험료를 지불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 주택의 선순위채권 규모가 클 경우 매매가에서 이를 뺀 금액에 대해서만 보증을 받을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대인 명의 바뀌면 곧장 이의제기할 것”
계약 후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발급받는 것은 ‘기본 중 기본’으로 꼽힌다. 이를 거쳐야 임차인이 보증금에 대한 법적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빌라왕 김 씨 사망 후 수면 위로 드러난 전세사기 사례에선 임대인이 계약 직후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꼼수가 다수 발견됐다. 임차인의 대항력이 전입신고 다음 날 발생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를 방지하고자 정부는 2022년 9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계약 체결 직후 임대인이 해당 주택을 매매하거나 근저당권을 설정할 수 없게 했다. ‘임차인의 대항력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임대인은 매매나 근저당권 설정 등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특약사항을 명시하도록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도 개선하기로 했다.
이미 세입자로 살고 있는데 임대인 명의가 변경됐다면 곧장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는 당부도 나온다. 전세사기 피해자 상당수는 처음 계약을 맺은 임대인이 주택 명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피해를 입었다. 빌라왕 김 씨 관련 사건의 경우 건축주에서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김 씨로, 김 씨에서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김 씨 소유 법인으로 임대인 명의가 바뀌었다. 조세영 법무법인 로윈 변호사는 “‘만기 전이어도 임대인이 변경됐다는 이유만으로 임차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며 “은행 등으로부터 명의 변경 연락을 받으면 무시하지 말고 수개월 안에 이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피해자가 이의제기를 했다면 죽은 김 씨가 아닌 건축주에게 소송을 걸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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