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의 엄마’ 어느 노점상의 마지막 길 [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1월 5일 12시 00분


4일 고(故) 주효정 씨 추모제
부천역 ‘왕초’ 노숙인 사망 목격하고 나눔 시작
아직 50대, 너무 이른 죽음…“하늘에서 필요했나봐”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만약 그날 반찬을 안 가져다 주셨다면…” “안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아파도 내색을 안 하셨다.”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도움을 받아온 세 사람은 4일 부천역 마루광장에 마련된 분향소 앞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 씨는 부천시가 허가한 광장 노점에서 탕수육을 팔아 노숙인의 자립을 도왔는데, 이들이 가족처럼 추모객을 맞고 있었다. 주 씨는 지난달 27일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저는 (주 선생님을) 안 지 5년 정도 된다. 처음에는 오갈 데가 없고, 집도 없어 여기서 술을 마셨다. 지금은 선생님 덕분에 끊었는데, 그때는 마셨다. 여기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았다. 선생님이 품어주시고, 잘 곳이 없다고 하면 이불을 가져다주셨다. 굶는 사람이 있으면 밥도 주시고, 심지어 자기 돈을 털어서 잘 데가 없으면 재워주셨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 방도 얻어주셨다. 근래에도 오갈 곳 없는 친구들에게 방 3개 정도를 구해주셨다. 계속 꾸준히 하셨다.”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전부 자식 같아…굶어 죽어도 돕고 싶어”
주 씨의 주변인에 따르면 주 씨는 6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노숙인들을 도왔다. 부천역에서 ‘왕초’라고 불리던 노숙인의 사망을 목격한 게 시작이었다. 주 씨는 거리의 노숙인을 꼼꼼히 살펴 음식을 나눠줬다. 잘 곳이 마땅찮은 노숙인에게는 자비를 들여 방을 구해줬다. 아픈 노숙인을 목욕시켜 함께 병원과 동사무소를 찾기도 했다. 전문가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노숙인의 사회 복귀에도 힘썼다. 이런 주 씨를 노숙인들은 가족처럼 따랐다는 게 주변인들의 증언이다.

박영애 경기도장애인희망나눔협회 대표는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는 방법을 물어와 알려줬다. 주 씨가 ‘굶어 죽어도 그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서 자기 돈 써가며 한 사람, 한 사람 품더라. 노숙인이 며칠 보이지 않으면 찾아다녔다. 어떤 때는 장사를 제치고 발 벗고 나섰다. 정말 열성이었다. 욕심은 없었다. 그저 전부 자식 같다더라. 그래서 쓴소리도 했다. 그러면 따라오니까. 주 씨는 마지막 날까지 엄청나게 뛰어다닌 사람”이라고 말했다.

류금동 자살예방한국연맹 부천지부장은 “주 씨가 제게 ‘삶의 희망을 갖지 못하는 노숙인들을 같이 도와서 살려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부천역 광장에서 2018년 7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상담과 복지활동을 진행했다. 그 후로는 장애인을 돕는 전문가를 연결해드렸다”고 했다.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언니, 허리가 아파”
주 씨의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알려졌다. 사망 전날 주 씨를 봤다고 기자에게 밝힌 이들은 그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날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추모제를 준비한 관계자는 “크리스마스 기간을 함께 보냈는데, 선생님이 즐거워하셨다”며 “돌아가시기 전날에는 빼빼로를 주셨다. 볼 때마다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주 씨에게 도움을 받아온 목격자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송내역 근처에 방을 구한 분이 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3일 간격으로 돌보셨다. 엄청 추운 날에 김치를 가져다주려고 왔다 갔다 하신 것”이라며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 8시경에 무료급식소에 계신 것도 봤다. 노숙인들이 밥을 타 먹어야 하는데, 안 타 먹는다. 그래서 선생님이 직접 줄을 서 급식 두세 개를 타셔서 김치하고 담배까지 가져다 주셨다”고 말했다.

근처에서 다른 음식을 파는 이모 씨(60)도 “밤 10시경 일이 끝나서 ‘야, 빨리 집에 가’라고 말해도 멍하니 앉아있더라. 내가 다시 ‘가자, 10시 되니까 사람도 없다’고 하니까, (주 씨가) ‘언니, 허리가 아파’라고 하더라. ‘빨리 집에 가서 누워’라고 당부하고 나는 귀가했다. 다음 날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했다. 혹시나 해서 전화해 봤더니 (주 씨의) 동생이 울더라. 하늘에서 필요로 했나 보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누가 (주 씨처럼) 그렇게 하느냐”며 “깊은 속은 모르지만, 우리가 아는 건 이것뿐이다. 주 씨가 노숙인을 돌보고, 할머니가 혼자 광장으로 나오면 어떻게서든 시청에 이야기를 해 쉼터로 보내려고 애썼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4일 ‘노숙인의 엄마’로 불린 고(故) 주효정 씨(57)의 추모제가 열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엄마는 떠났지만…
주 씨의 추모제는 자선단체인 물푸레나무청소년공동체가 주관했다. 지난해부터 주 씨와 함께 노숙인을 도운 단체다. 주 씨가 활동했던 광장과 추모 공간 여기저기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정아 물푸레나무청소년공동체 대표는 추도사에서 “학창시절 리더십이 있으셨고, 교우관계가 굉장히 좋으셨다고 들었다. 저도 옆에서 뵀는데, 선생님은 열정적이시고 따뜻하시고 씩씩하셨던 분”이라며 “우리에게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삶으로 보여주신 선생님을 추모한다”고 말했다.

정원준 햇살상인협동조합 이사장은 “자기도 힘들고, 자기 몸도 아프고, 자기 이도 없는 사람이 이 없는 친구들을 (도왔다. 선생님이) 제가 여기서 우는 걸 너무 싫어하실 거다.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며 “(선생님의) 꿈이었을지도 모를 이분들에 대한 케어를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제는 주 씨의 도움을 받은 이들의 편지 낭독과 합창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은 편지에서 “그동안 오갈 데 없는 우릴 도와주신 은혜에 감사하다. 아낌없이 밥을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끊임없이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추모제가 끝나자 몇몇은 흘린 눈물을 닦고 참석자들이 앉았던 의자를 스스로 정리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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