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넘는 라돈 침대 ‘핑퐁 게임’의 전말[이미지의 환경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7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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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라돈이 검출된 침대 매트리스가 충남 당진항 야적장에 쌓여있는 모습. 동아일보 DB
2018년 라돈이 검출된 침대 매트리스가 충남 당진항 야적장에 쌓여있는 모습. 동아일보 DB
“그거(침대) 아직도 못 치우고 있어요?”

5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달군 ‘라돈 침대’와 관련해 4년 전 정부 연구용역에 참여했던 한 연구자가 최근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2018년 한 유명 브랜드 침대에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되면서 전량 회수되는 소동이 있었다. 이후 확대된 조사에서 방사능을 내뿜는 다른 제품들이 추가로 확인됐고 이들 역시 침대와 함께 리콜 조치를 받았다. 그 제품들이 여전히 충남 천안의 침대 공장 등 전국 각지의 제품 공장 창고에 쌓여있다. 용역연구를 수행한 연구자가 놀랄 정도로 긴 시간(5년) 동안 말이다.

지난달 정부가 마침내 이들을 처리하기로 하고 전북 군산에 있는 공공소각장으로 옮겨 태우려고 했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계획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환경부는 “시범소각을 통해 안전을 확인했다”고 호소했지만, 반대 측은 “정부의 시범소각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계획 중단이 아닌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바야흐로 사태 5년 만에 제품들을 치울 수 있게 됐다며 기대에 부풀었을 업체와 담당 공무원들은 이제 거의 체념한 듯한 모습이었다. “힘이 빠진다. 주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설명회를 열거나 의견수렴의 자리를 만들 수는 있겠지. 그런데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2018년 6월 우체국 직원들이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라돈이 검출된 침대 매트리스를 수거해 운반차량에 담고 있다. 동아일보DB
2018년 6월 우체국 직원들이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라돈이 검출된 침대 매트리스를 수거해 운반차량에 담고 있다. 동아일보DB
유명 침대서 방사성 물질…570 t 수거
2018년 ‘음이온 파우더’가 들어간 한 유명 침대 제품에서 라돈이 상당량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라돈 침대 사건의 시작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라돈이란 기체 상태의 방사성 물질이다. 방사성 물질은 쉽게 말해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물질인데 종류에 따라 그 위해도가 다르다. 라돈의 경우 광산 노동자들에게 폐암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으로 체내 흡수될 경우 각종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침대에서 라돈이 발생한 원인은 음이온 파우더에 쓰인 광물질(모나자이트) 때문이었다. 그 물질이 희귀하고 유별난 물질이었냐고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라돈은 흙이나 광물질, 석재 등에서 흔히 방출되는 자연 방사성 물질이다. 즉 이들을 재료로 만들어진 제품에서는 라돈이 검출될 수 있다. 건축물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건축물 실내공기질 기준에는 라돈 기준치도 들어가 있다.

문제가 된 침대에서는 건축물 실내공기질 기준치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라돈이 검출됐다. 일부 언론은 라돈 수치의 발암 위험이 ‘담배 250개비를 매일 피울 때와 같은 수준’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 위해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매일 최소 4시간은 바짝 붙어 이용하는 침대에서 방사선이 나온다는 게 일반적이라거나 달가울 일은 아니었다. 연이은 조사에서 다른 침대와 생활제품에서도 방사선 검출 소식이 이어지자 ‘라돈포비아(라돈 공포증)’가 급속히 확산됐다.
2018년 6월 방사능방호기술지원본부 직원이 서울 송파구 관내 아파트 단지에서 수거된 라돈 침대 매트리스의 방사능을 측정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18년 6월 방사능방호기술지원본부 직원이 서울 송파구 관내 아파트 단지에서 수거된 라돈 침대 매트리스의 방사능을 측정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정부는 문제가 된 제품들을 일단 신속히 회수하도록 했다. 처음 문제가 됐던 유명 브랜드 침대 480t을 포함해 총 23개 업체 570 t의 폐기물이 각자의 공장으로 수거됐다.

그렇게 사태가, 아니 사태의 ‘전반전’이 마무리됐다. 이제는 기나긴 ‘후반전’의 시작이었다.
3년간 제도 완비했는데 소각 나서는 업체 없어
수거가 끝났으니 수거한 폐기물을 처리해야 했다. 소각하거나 혹은 매립하거나. 다른 제품들의 경우 리콜이나 수거가 문제라면 모를까 폐기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방사성 물질이 나온 라돈 침대는 이야기가 달랐다. 방사능이 검출된 생활제품을 대량으로 폐기해야 하는 상황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처리 방법, 관련법, 담당 부처까지 뭐 하나 전례가 없었다.

가장 먼저 주무부처를 정하는 것이 시급했다. 본래 천연방사성 물질을 포함해 모든 방사성 물질에 대한 관리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소관이고, 생활제품 폐기물 처리는 환경부 담당이었다. 그렇다면 방사성 물질이 든 생활제품 폐기물은? 국무조정실에서 관계부처 간 회의를 거쳐 환경부가 책임을 맡기로 결정했다.

주무부처가 된 환경부는 곧장 처리방안 마련과 관련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2019년 방사성 물질이 들어간 제품 처리 관련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앞서 ‘침대 아직 못 치우고 있느냐’며 깜짝 놀랐던 연구자가 참여했던 연구다. 이를 바탕으로 처리 기준을 만들고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은 1년이 넘게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개정법안이 입법예고를 거쳐 최종적으로 시행된 게 2021년 9월이었다. 라돈 사태가 발생한 지 3년 4개월만이다.

드디어 처리만 남았다. 이제 법에 근거해 제품들을 소각해줄 업체만 찾으면 됐다. 전국 곳곳의 민간소각장들로부터 소각 지원 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손을 드는 곳이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관련업체 협회로부터 가능성이 있는 곳들 목록까지 받아 직접 접촉해보았는데 소각에 나서겠다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고 전했다. 민간소각장들 입장에서도 전국적으로 논란이 됐던 라돈 침대를 도맡아 태우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2년 상반기가 지나도록 소각 업체를 찾지 못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벌써 라돈 사태가 일어난 지도 4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고민 끝에 환경부가 내린 결정이 바로 전북 군산에 있는 환경부 관할 지정폐기물 공공처리장(공공소각장)에서 소각하는 것이었다. 태워야 하는 물량에 비하면 시설이 턱없이 작고 증설공사도 필요했지만, 이곳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안전” vs “못 믿겠다”
환경부는 본 소각에 앞서 시범 소각을 실시했다. 실제 환경, 건강 영향이 어떤지 살피기 위함이다. 지난해 9월 30일부터 이틀간 국립환경과학원, 원자력안전위원회 등과 함께 침대 14t을 시범 소각하고 그 결과를 분석했다.

환경부가 제공한 당시 분석 자료를 보면 소각재의 방사능 농도는 천연방사성제품폐기물 관리기준인 g당 10Bq(베크렐)에 크게 못 미쳤다(0.04~0.38Bq). 처리를 담당한 작업자의 피폭량은 이번에 개정된 폐기물관리법 상 천연방사성폐기물 처리 작업자 피폭선량 기준의 1만분의 1 수준이었다. 극히 미미한 양이다. 시설 외부 작업자의 피폭량은 배경선량(자연 상태 방사능 농도) 정도에 불과했다.

배기가스를 통해 중금속, 매연 등 35개 항목 허용기준 초과 여부도 역시 문제가 없었다. 대부분 측정치를 크게 밑돌아 ‘불검출’로 나오거나 허용기준 수치 미만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실험만 놓고 보면 사실상 건강 영향은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6일 전북 군산 공공소각장 앞에서 환경단체들이 방사성폐기물 소각 처리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지난해 12월 6일 전북 군산 공공소각장 앞에서 환경단체들이 방사성폐기물 소각 처리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그러나 뒤늦게 소각 소식을 접하고 이 결과를 전해 받은 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은 정부의 실험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체 방사성폐기물의 2.5%를 시범 소각한 결과치로 방사능 건강 위험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2018년까지 라돈 침대를 쓴 사용자 가운데 유방암, 갑상선암 등 암 환자가 발생한 사실도 확인됐다. 문지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팀장은 “1회 소각만 가지고 이야기할 게 아니다. 570 t 소각이 미칠 영향과 총체적인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 정부가 제시한 결과로는 안전함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만약 정부가 소각을 강행할 계획이라면 그들을 포함해 외부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투명한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민협의체와 소통했다는데…
그렇다면 왜 애초 ‘투명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밀실조사’를 했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 환경부는 “시범 소각은 물론 소각 결정 직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진행상황을 (군산 공공소각장) 주민지원협의회 및 인근 마을 발전협의회와 공유해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환경부가 이야기하는 주민지원협의회란 군산 전체 주민들의 모임이 아니라 소각장 인근 지역 주민들이 모여 만든 협의체다. 공공소각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공해 문제를 감시하고 지원책을 논의하기 위해 1997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단다.

환경부는 그동안 소각장 관련해 논의해야 할 사안이 있으면 이 협의회를 통해 논의해왔다고 한다. 협의체에는 군산시 관계자도 들어가 있다고 했다. 이번 소각 건도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처음부터 협의회와 이야기했고 모든 것을 공유했다는 게 환경부 설명이다.

2018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라돈 침대 방사능으로 인해 암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사용자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동아일보DB
2018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라돈 침대 방사능으로 인해 암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사용자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발언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동아일보DB
기존 관행에 따랐다는 환경부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그랬다 하더라도 라돈 침대에 대해서는 그 절차가 좀 달랐어야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 국민적으로 관심이 높았던 사안이다. 이로 인해 질병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사성 제품 수거와 처리에 대한 첫 선례가 될 수도 있었던 만큼 보다 공론화된 논의를 거쳤어야지 않을까.

나중에 들으니 군산시 관계자들도 실제 협의체 회의에 참석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한다. 만약 군산시 관계자들도 없었고 극히 일부 지역 주민들만 참석한 협의체였다면 ‘시도 모르고 주민도 모르게 조사하고 결정했다’는 반대 측의 비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라돈 침대와 그 소각이 끼칠 위해성이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별 것 아닐 수 있다. 조사에 참여한 한 방사성 물질 전문가는 “과학은 과학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충분히 과학적이고 보수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안전하다고 나왔는데 그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그처럼 안전한 것이었다면 더욱이 현재의 상황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라돈 침대의 향방은 이제 다시 안개 속에 빠졌다. 군산시 관계자는 “소각이 잠정 중단된 이후 지금까지 환경부로부터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고 전했다. 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환경부는 당초 1월 중순까지 처리 방향을 정리해 밝히겠다고 했지만 군산 소각안은 물론 다른 방안까지 폭넓게 검토하기로 하면서 결정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도, 어디서도 처리하지 않겠다고 ‘핑퐁 게임’만 계속할 수는 없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번에는 인근 주민들을 잘 설득하고 준비도 차질 없이 이뤄져 제품들이 잘 처리되기를, 그래서 라돈 침대에 영원히 작별을 고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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