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찰의 주지스님이 사찰 운영을 함께 했던 전 배우자를 상대로 신도들의 시주금을 빼돌렸다며 3억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방법원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강경숙)는 지난해 10월 한 사찰 주지 A씨가 전 배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는 경남 양산시 소재 한 사찰의 주지스님으로, 배우자 B씨와 2009년께부터 함께 생활하며 사찰을 운영했다.
문제는 A씨와 B씨가 2011년 11월 혼인신고 이후 9년 만인 2019년 8월 협의이혼을 하면서 발생했다.
B씨는 2009년께부터 2018년 5월까지 이 사찰의 총무를 맡아 신도들의 시주금 등을 관리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A씨는 B씨가 이 과정에서 시주금을 임의로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거나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B씨가 자신의 명의로 된 사찰 운영비 통장과 인감도장을 보관하며 시주금 18억8000여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는 등 혼인 이전부터 이혼까지 약 21억원 상당을 횡령 또는 배임했다는 게 A씨 측 주장이다.
A씨는 B씨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부당이득반환 청구의 일환으로 약 3억5000만원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각하했다. ‘각하’는 민사소송에서 소송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부적법하다고 간주해 본안 판단 없이 소송을 종결하는 처분이다.
법원은 왜 A씨 측 주장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을까.
재판부는 이 사찰이 재단 또는 사단으로서 독립된 권리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사찰 운영에 대한 별도 기구나 규약이 존재하지 않는 A씨의 개인 사찰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불교 신도나 승려 등 개인이 토지를 매수해 사찰건물을 설립하고 불교의식을 행하는 경우, 이 사찰의 창건주가 특정 종단에 가입해 소속 사찰로 등록하고 사찰부지와 건물에 대해 등기를 마침으로써 사찰재산을 개인이 아닌 사찰 자체에 귀속시키는 등 절차를 거쳤다면 이는 재단 또는 사단으로서 독립된 권리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렇지 못한 경우 창건주 개인사찰로서 불교목적시설에 불과하다”며 “일시적으로 사찰재산 일부를 사찰 명의인으로 등기를 마쳤다는 것만으로 재단으로서 단체성을 취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두 사람이 혼인 전부터 사찰 설립부터 운영까지 협력했다는 점에서 시주금 사용 및 운용 권한이 특유재산에 해당할 수 없다고 봤다. 특유재산은 부부 중 한 명이 혼인 이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재판부 판단은 B씨에게도 시주금을 사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혼인기간 동안 협력해 주지와 총무로서 사찰을 함께 운영했던 것으로 보이므로 통장에 입금되는 돈과 시주금에 관해 A씨가 B씨에게 포괄적인 사용 및 운용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추단된다”며 “이 같은 권한 위임에 의해 금원을 이체·인출한 이상 횡령·배임으로 볼 수 없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통장과 B씨 명의 계좌의 돈 일부는 사찰 운영과 생활비 등으로 사용된 정황을 종합하면 A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B씨의 횡령·배임 행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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