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수사 중인 병역비리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병역브로커 김모 씨가 법원에 상담료 지급명령까지 신청하며 상담계약을 파기하려 했던 의뢰인들을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김 씨 등이 일단 계약서를 쓰면 ‘취소는 불가능하다’며 압박하는 방식으로 상당수 의뢰인들을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허위 뇌전증(간질) 진단서를 이용한 병역비리에는 프로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 등 최소 70명 이상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 “상담료 달라” 강제집행 신청하며 압박
8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2021년경 군 입대를 앞둔 A 씨는 온라인에서 자신을 ‘국방 행정사’라고 소개한 김 씨의 광고를 보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입대 컨설팅’을 내세운 김 씨는 통화에서 “내가 군인 출신이라 어떻게 군 면제를 받는지 잘 안다. (A 씨가 사는) 광주까지 가서 상담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광주에서 A 씨를 만난 김 씨는 “뇌전증이라고 들어봤나. 뇌전증으로 2년 동안 치료받으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 A 씨가 “뇌전증이 없는데 어떻게 진단을 받느냐”고 묻자 김 씨는 “뇌전증 환자의 70%는 원인 없는 발작 증상을 보인다. 발작이 있다고 거짓말하면 된다”며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줬다.
당시 김 씨는 상담 수수료라며 “뇌전증 진단을 받으면 2000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A 씨가 망설이자 김 씨는 다른 계약서를 보여주며 “현역 의사도 1억 원에 같은 계약을 맺은 적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A 씨는 계약서에 서명했고, 뇌전증 검사 일정도 잡았다. 다만 불법일 수 있다는 생각에 실제로 검사는 받지 않았다.
얼마 후 김 씨는 A 씨에게 “검사를 받았느냐”고 물었고 A 씨는 “불법인 것 같아서 하지 않겠다”며 계약 파기를 요청했다. 그러자 김 씨는 “상담 수수료 2000만 원을 달라”며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법적 지식이 부족한 A 씨가 대응하지 않는 사이 지급명령은 확정됐다. 이후 김 씨는 법원에 강제집행을 시도했고, A 씨는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원에 강제집행 불허를 요청했다. 결국 법원은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103조를 근거로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 사건의 계약은 위법함에 따라 무효이므로 그에 근거한 지급명령과 강제집행 또한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 검찰 “압박 때문에 가담했더라도 형사처벌”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 합동수사팀은 병역비리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의 병·의원 기록을 확보하며 사실관계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병원의 뇌전증 진단 및 치료 과정이 적절했는지 살피는 한편으로 복수의 현역 축구선수와 승마 볼링 등 다른 종목 선수, 래퍼와 법조계 인사 자녀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일부 의뢰인들은 김 씨의 압박에 못 이겨 계약을 이행했다고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K금융그룹 프로배구단 소속인 조재성 선수도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압박해 병역비리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은 의뢰인들이 김 씨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병역비리에 가담했더라도 형사처벌을 피해 갈 순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계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뇌전증 환자에 대한 편견이 커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뇌전증학회는 5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병역비리 의혹이 뇌전증 환자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병역면제 기준 강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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