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피격 및 시신소각 보도가 나오자 ‘월북몰이’로 방향을 틀었다고 검찰이 판단했다. 검찰은 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서해 피격과 관련한 보고를 받지 못했으며 서 전 실장이 모든 상황을 주도했다고 봤다.
10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109쪽 분량의 서 전 실장 공소장에는 2020년 9월22일 서해상에서 숨진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실종, 피격·시신소각 첩보, 서 전 실장의 지시 등이 시간순으로 담겼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사건 당일 실종 보고를 받고도 오후 7시쯤 퇴근했으며 이후 이씨가 피살되자 서 전 실장 자신에게는 물론 문재인 정부에도 강력한 비판과 책임 추궁이 있을 것을 염려해 은폐를 시도했다고 판단했다.
또 이씨가 피격된 지 3시간 만인 9월23일 오전 1시쯤 문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남북화해 및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사전녹화 화상연설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피하려는 것도 범행동기로 적시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은 금강산 관광 등 합법절차 과정에서 발생한 ‘박왕자씨 사건’과 이번 사건을 차별화하기 위해 이씨를 북한 해역에 불법 침입한 월북자로 조작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사건 다음날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벗어놓고 실종’ ‘가정불화로 지방에서 혼자 거주’ 등의 내용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직접 만들어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전달했다고 본다.
특히 이씨 피격과 시신 소각이 보도되면서 정부가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 드러나자 미조치·무대응 비난을 피하기 위해 ‘월북몰이’ 작업을 구체화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한국 사회에서 자진 월북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의 명예에 심각한 피해를 주게 되는데도 서 전 실장은 미리 정한 자진 월북 결론에 맞춰 수사 결과를 졸속 발표하게 했다”고 밝혔다.
공소장에는 서 전 실장이 사건 은폐를 결정한 직후 일부 비서관들이 강하게 반발한 사실도 적혔다.
2020년 9월23일 오전 9시쯤 열린 비서관 회의에서 서 전 실장은 “사건 발표는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비서관들은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 자리에서 “어차피 공개될 텐데 바로 피격 사실을 공개하는 게 맞지 않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서 전 실장이 무시했다고 한다.
일부 비서관은 회의 직후 사무실로 돌아와 “이거 미친 것 아니냐, 이게 덮을 일이냐” “국민이 알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실장들이고 뭐고 다 미쳤어” 등의 발언을 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최종 책임자를 서 전 실장으로 봤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은 9월23일 당시 윤형중 국가안보실 사이버정보비서관(현 한국공항공사 사장)에게 피격 사건 관련 내용을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설명하는 보고에 포함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이후 윤 비서관은 당일 아침 행정관에게 해당 보고 초안에 기재돼 있던 피격 사건 관련 내용을 삭제하도록 지시했고 이 내용은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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