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9월 22일부터 국정원이 수집한 첩보 및 관련 자료들을 즉시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라 고(故) 이대준씨 관련 첩보 51건(중복 포함)이 국정원 내부 시스템에서 일괄 삭제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박 전 원장 공소장에 따르면 박 전 원장은 이 씨가 피살된 다음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 열린 1차 안보관계장관회의를 마친 후 노은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국정원 정무직회의를 소집해 이 씨 관련 피격 내용을 철저히 보안 유지하라”며 이 같이 밝혔다고 한다. 이에 노 전 실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 정무직회의를 소집, 국정원 1차장 산하 간부와 2·3차장, 기조실장 등에게 해당 지시를 전달했다. 노 전 실장은 “원장님과 1차장이 청와대에 가면서 티타임을 열어 급히 전달하라고 한 사항이 있다”며 ‘우선 서해 표류 아국인 사살 관련 국정원 내 첩보 관련 자료도 모두 회수해 삭제조치하라’고 박 전 원장의 지시를 전달했다. 조치를 완료한 후에는 이행조치 결과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노 전 실장으로부터 박 전 원장의 삭제 지시를 전달받은 당시 국정원 3차장 A 씨는 이같은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 씨 관련 첩보 일체를 모두 시스템에서 최대한 빨리 삭제하라”며 첩보를 일괄 삭제처리하도록 실무진에 지시했다.
노 전 실장으로부터 삭제 지시를 받은 국정원 1차장 산하 국장 B 씨도 23일 오전 10시28분부터 삭제 지시가 포함된 정무직회의 대참 결과를 국정원 다른 차장 및 국장들에게 전자우편으로 전달했다. 이에 따라 담당관 C 씨는 직속 지휘체계상 간부들의 ‘이례적 삭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이 씨 관련 첩보 분석보고서 4건(중복 포함)을 삭제한 것으로 검찰은 공소장에 적시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지난달 29일 박 전 원장과 노 전 실장을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첩보 삭제 지시 혐의를 부인해온 박 전 원장은 “기소의 부당함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