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당분간 낮에는 연탄을 안 때고 냉골바닥에서 버티려고요.”
1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 달동네. 조모 씨(67)는 난방을 안 해 입김이 나오는 차가운 방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맞았다. 털모자를 쓰고 패딩 점퍼를 입은 조 씨는 “도시가스가 안 들어와 연탄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데 최근 지원이 줄면서 매달 20일이면 연탄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다른 주민들도 “해마다 명절을 앞두면 연탄 자원봉사자들이 동네 곳곳에 보였는데 올해는 적막만 감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물가는 오른 반면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자원봉사자와 후원금은 줄어 취약계층이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 고물가 여파로 연탄 지원 25% 줄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후 처음 맞는 설 명절이지만 달동네에선 명절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정릉동 달동네 주민 성갑순 씨(77)는 “예전보다 연탄 지원이 많이 줄어든 탓에 주민들끼리 ‘네가 훔쳐갔느냐’며 싸우는 일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2021년 말 한 장에 1100원 수준이었던 연탄 가격은 지난해 말 약 1400원으로 약 27% 올랐다. 연탄은행 관계자는 “가격이 오르면서 매달 가구당 200장씩 지원해왔던 연탄을 올해는 상당수 가구에 월 150장도 못 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는 무료급식소들도 명절을 앞두고 고물가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다. 대전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나눔의 집’에 따르면 지난해 초 도시락 100인분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비용은 월 400만 원이었지만 1년 만에 비용이 100만 원이나 올라 최근에는 500만 원이 됐다. 이 단체에서 저소득층 휴식 공간에 쓰던 난방용 등유는 한 통에 24만 원에서 32만 원으로 8만 원 올라 아껴 쓰는 상황이다.
서울 동대문구 무료급식소 ‘밥퍼나눔운동’(밥퍼)에서 무료 급식을 받는다는 김모 씨(67)는 “원래 고기나 달걀 반찬이 거의 매일 나왔는데 이제는 3일에 한 번꼴로 나오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 자원봉사자 3분의 1로, 후원금은 반 토막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자원봉사자와 후원금도 줄고 있다.
연탄은행에 따르면 최근 연탄 배달 봉사에는 회당 자원봉사자 50명 안팎이 모이고 있다. 지난해는 150여 명씩 모였는데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자원봉사자 이모 씨(43)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다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올 때마다 봉사자 수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10년 이상 봉사를 해왔던 분마저 ‘운영하는 식당이 장사가 안 돼 한동안 봉사에 못 나올 것 같다’고 할 정도”라며 아쉬워했다.
취약계층 후원을 위한 기부금도 줄고 있다. 경기 안산시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안산행복나눔무료급식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 연간 2000만 원 안팎이었던 후원금은 지난해 1000만 원으로 반 토막 났다. 급식소 관계자는 “후원금은 줄어드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니 평소 쓰던 식재료보다 값이 싼 재료를 쓸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미경 밥퍼 부본부장도 “중소기업 30여 곳이 최근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이유로 후원을 중단했다”며 “반찬 수를 줄일 순 없어서 원가가 비싼 재료를 쓰는 빈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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