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그룹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8개월여간의 해외 도피 끝에 17일 한국에 붙잡혀온 가운데 검찰이 김 전 회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간 친분을 보여주는 정황을 다수 파악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과 이 대표가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부인하면서 “상대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과 배치되는 정황이 나타난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영남)는 최근 쌍방울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면서 김 전 회장과 이 대표 간 친분이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쌍방울 부회장 출신 한모 씨의 지난해 1월 녹취록을 확보해 신빙성 등을 분석 중이라고 한다. 한 씨가 지인과 나눈 대화가 담긴 녹취록에는 “이재명 후보는 성태 형하고는 가깝지”, “(이 대표가) 내 사무실에도 두 번이나 들렀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화할 상황이 아니다”라고만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이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이 대표를 모르냐’는 취재진의 질의에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이 대표의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도 13일 유튜브 방송을 통해 “김성태라는 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쌍방울과의) 인연이라면 내의 사 입은 것밖에 없다”고 했다. 검찰은 이날 김 전 회장을 수원지검으로 압송해 늦은 시간까지 조사를 이어갔다. 또 18일 중 김 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한편 민주당은 이 대표의 검찰 출석 여부를 놓고 이틀째 고심을 이어갔다. 민주당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17일 기자들과 만나 “당내에선 불출석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며 “당 지도부가 모이는 18일,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늘 金 영장청구 방침
檢, 쌍방울 전환사채 용처 추궁 金, 배임-변호사비 대납등 부인 검찰-금융통 출신 변호사로 맞대응
“대납 의혹은 말도 안 된다. 이재명 씨와는 전화나 뭐 이런 건 한 적이 없다.”
17일 오전 태국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 전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김 전 회장은 하늘색 셔츠에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고, 한 손에는 ‘시골무사 이성계’라는 책을 들고 있었다. 이 책은 2009년 발간된 역사소설로 태조 이성계의 영웅담을 각색한 내용이다.
김 전 회장은 이 대표와의 관계를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 “전화번호도 모른다.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또 쌍방울을 둘러싼 배임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호화 도피 의혹에 대해선 “김치 먹고 생선은 좀 먹었는데 그걸 황제 도피라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검찰은 17일 오전 3시 25분경(한국 시간) 한국 국적기에 탑승한 직후 김 전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 김성태, 금융통 특수통 전관 변호사로 맞대응
김 전 회장은 이날 오전 8시 25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을 곧바로 호송차량에 태운 뒤 오전 10시 45분경 수원 영통구 수원지검 청사에 도착했다. 검찰은 조사에서 쌍방울에서 2018∼2019년 발행한 전환사채(CB)의 성격과 용처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자신이 소유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CB를 매입한 뒤 마치 외부의 투자자로부터 투자자금을 유치한 것처럼 허위 공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과정을 쌍방울 관련 주식에 호재성 정보로 활용한 뒤 주가를 부양해 막대한 이익과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반면 김 전 회장은 “CB 발행과 유통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이 이날 조사를 받을 때 김충우 변호사(사법연수원 24기)가 조력을 위해 수원지검을 찾아와 눈길을 끌었다. 김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 금융정보분석원(FIU) 파견 경험이 있고, 검찰 퇴직 후에는 금융감독원에서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실장 등을 지낸 금융통이다. 또 김 전 회장은 법무법인 광장의 유재만 변호사(16기) 등을 추가로 선임했다. 유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절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지낸 특수통이다.
● 검찰, 영장 청구 후 ‘변호사비 대납’ 본격 수사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해 18일 중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추가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또 쌍방울의 수상한 CB 유통을 통해 벌어들인 김 전 회장의 수익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규명할 방침이다. 해당 자금의 경로를 추적해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과 이 대표가 가깝게 지냈다는 관련자들의 진술도 다수 확보했다고 한다.
1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뇌물 혐의 공판에선 김 전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이자 계열사 대표를 지냈던 엄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은 엄 씨에게 진술조서를 제시하며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김 전 회장, 방용철 부회장, 이 대표, 이 전 부지사가 가까운 관계였던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변했는데 맞느냐”고 물었고, 엄 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또 “이 대표의 경우 김 전 회장과 가깝다는 얘기가 회사 내에서 많이 나왔다”는 내용을 담은 엄 씨의 조서도 이날 재판에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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