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정모 씨(33)는 1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설 명절에 고향에 안 내려가기로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씨는 지난해 거리 두기 해제 후 처음 맞은 추석에 고향에 갔다가 부모님과 집안 어른, 조카 용돈으로 100만 원 가까이 지출했다. 정 씨는 “올해는 용돈을 많이 드리지 못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고물가에 경기침체 우려까지 겹치면서 명절을 혼자 보내겠다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세뱃돈과 용돈 부담은 물론이고 치솟은 기름값과 선물값 때문에 귀성길 부담이 커졌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34)는 매년 설마다 고향인 전북 익산을 찾았지만 올해는 귀성을 포기했다. 이 씨는 “집안에서 맏이다 보니 명절이면 할머니와 친척 동생들 세뱃돈으로 수십만 원이 나간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생활비도 크게 증가해 그렇게 쓸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유가가 큰 폭으로 오른 것도 귀성 포기에 영향을 미쳤다. 경기 시흥시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27)는 “고향이 전남 목포인데 왕복 거리를 따져 보니 기름값만 20만 원가량 들더라. 귀성 선물까지 준비하려면 수십만 원이 깨질 것 같다”며 고향에 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경유 판매가는 2021년 12월 기준 L당 1469원에서 2022년 12월 L당 1783원으로 1년 만에 20% 넘게 올랐다.
물가가 오르다 보니 건네야 하는 세뱃돈 액수도 높아졌다. 직장인 강선혜 씨(30)는 “지난해 조카와 사촌동생들에게 한 명당 1만 원씩 총 7만 원을 줬는데 이제는 물가가 올라 1만 원으로는 눈치가 보인다”며 “액수를 올리자니 사회 초년생인 나도 부담이 돼 고민 끝에 올 연휴 때는 집에 있기로 했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초등학생에게 적정한 세뱃돈 액수가 얼마인지를 놓고 누리꾼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한다.
고향에 안 가는 이들 중에는 “노느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경우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류모 씨(28)는 “명절 때 집에 내려가면 가족들 용돈에 교통비까지 대략 70만 원 정도 썼다”며 “올해는 귀성 대신 연휴 기간에 돈을 더 많이 주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