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질병을 앓는 딸을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쓴 남성이 회사로부터 눈칫밥을 먹고 은근한 괴롭힘을 받았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선례 없는 중견기업 아빠 육아휴직 후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아들, 딸 두 아이의 아빠라고 밝힌 글쓴이 A씨는 직원 300여명, 연매출 약 2000억원인 국내 중견기업에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딸의 선천적 질병 치료에 전념하고자 2017년 11월 1일부터 1년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회사에서 남성이 낸 육아휴직은 A씨가 최초였다고.
문제는 A씨가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 뒤였다.
그는 “먼저 자리가 없어졌다. 저의 복귀 전날 총무팀에서 책상을 치웠더라”라며 “두 번째로는 뜻하지 않던 불로소득. 대기발령 상태가 됐고 매일같이 총무팀으로 출근하면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회의 책상에서 12월 31일까지 대기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A씨와 친했던 동료들 태도도 달라졌다. 그는 “점심시간에 식당을 가니 친하게 지냈던 직원들이 제 옆에 오길 꺼리더라. 복귀 첫날 점심을 혼자 먹고 친했던 동료들 불편할까 봐 그 후 식당을 가지 않았다”고 했다.
5시30분이 되자마자 칼같이 퇴근했다고 밝힌 그는 “집 앞 인적이 드문 육교 하나가 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다 아무 일 없이 여느 가장처럼 집으로 들어갔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중 A씨는 원래 일하던 팀에서 열린 연말 회식에 참여했다. 이 회식에는 A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고위직 간부도 참석했다.
이에 A씨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 간부를 집까지 데려다 줬다. 그는 “(간부가) 집에 들어가기 전 뒤에서 무릎 꿇고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사정했다”면서 이후 경험도 없던 자재관리 부서로 발령났다고 전했다.
발령 이후도 만만치 않았다. A씨는 온갖 힘든 일과 청소부 역할까지 하게 됐다. 다행히 그는 이 부서의 팀장과 팀원들의 보살핌으로 하루하루 견딜 수 있었다.
그는 “(팀원들에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윗선이 저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며 “‘최대한 힘들게 해서 못 버티고 스스로 퇴사하도록 만들어라’라는 특명 아래 운영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A씨는 6개월이 지나 육아휴직의 잔금을 받았고, 1년 뒤에는 좋은 곳에서 제안을 받아 회사를 이직하게 됐다.
A씨가 떠난 회사에는 “A씨처럼 못할 거면 육아휴직은 꿈도 꾸지 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아직 아빠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끝으로 그는 딸의 질병도 나았다고 전했다. 그는 ”2022년 검진 때 ’병원 안 와도 되겠어‘라는 말과 함께 아내와 울면서 병원을 나왔다“고 덧붙였다.
A씨의 글은 갈무리돼 ’한국에서 아빠가 육아휴직 쓰면 벌어지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19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퍼졌다.
이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육아휴직 못 쓰게 하면 과징금 엄청 세게 때려야 한다. 사회적 배려나 합의로는 씨알도 안 먹힌다“, ”이래서 법으로 육아휴직을 가게끔 강제해야 한다“, ”저러면 누가 애를 낳겠냐“, ”중견기업도 저러는데 중소기업은 어떻겠냐“,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냐“, ”출산율 떨어지는 이유“ 등 공분했다.
동시에 ”육아휴직 눈치 보면서 썼다“, ”남자가 육아휴직 쓰면 유난스럽게 보더라“, ”우리 회사도 남자가 육아휴직 내면 복직한 해에 고과 최하점주더라“ 등 공감한다는 의견을 남겼다.
한편 육아휴직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가진 근로자는 유급으로 최소 30일 최대 1년 이내 휴직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육아휴직통계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시작한 사람은 2020년보다 1.0%(1672명) 증가한 17만3631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아빠는 4만1910명으로 1년 전보다 8.0%(3097명) 증가한 반면, 엄마는 13만1721명으로 1.1%(-1425명) 감소했다.
아울러 육아휴직을 한 아빠와 엄마 모두 기업체 규모 300명 이상인 대기업에 소속된 비중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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