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 등 한라산에 방치된 방사동물, 가축과 생태계 해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5일 03시 00분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불안감 주고
멧돼지 등과 함께 생태계 교란시켜
중산간지역서 들개 2000마리 서식

제주시 용강동 해발 640m가량의 제주마방목지에 한라산 야생노루 뒤로 흰 무늬가 선명한 꽃사슴이 무리를 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이 꽃사슴들은 외래종으로 의도적으로 방사하거나 우리를 빠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시 용강동 해발 640m가량의 제주마방목지에 한라산 야생노루 뒤로 흰 무늬가 선명한 꽃사슴이 무리를 지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이 꽃사슴들은 외래종으로 의도적으로 방사하거나 우리를 빠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3일 오전 10시경 제주시 오라동 계곡 관광지인 방선문 입구. 길 옆 숲에서 갑자기 개가 어슬렁거리면서 나왔다. 머리와 다리는 하얀 털, 몸통은 검은색인 개가 10여 m를 따라왔다. 언제 달려들지 몰라 긴장한 채 서서히 물러서자 개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목에 줄이 있었지만 한눈에 봐도 들개가 확실해 보였다.

이날 낮 해발 630m의 제주시 어승생공동묘지에서도 흰색 들개가 보였다.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제주시 오라골프장 인근 작은 화산체인 검은오름 주변에서는 최근 들개 3, 4마리가 몰려다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

주인이 잃어버린 개도 있지만 몰래 버리거나 방사한 개들이 대부분이다. 들개들은 주민이나 관광객에게 불안감을 주고 가축을 잡아먹는 등 피해를 입히고 있다. 들개는 제주 토종이 아닌 토끼, 꽃사슴, 멧돼지, 흑염소 등과 더불어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24일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지역 유기견은 2020년 6642마리, 2021년 5373마리 등으로 추정됐다. 이 유기견들 중 일부는 한라산과 오름, 숲속에 터를 잡고 야생 생활을 하면서 자체 번식을 하고 있다. 야생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성장하면서 공격성이 강한 들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12월 제주도 용역조사 결과 중산간지역(해발 200∼600m)에서 서식하는 들개가 2000마리 내외로 추산됐다.

이 들개들로 인해 닭, 오리, 송아지, 망아지 등의 가축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2020년 가축 200여 마리가 죽임을 당했고 2021년에는 닭 806마리 등 851마리가 피해를 봤다. 지난해 제주시 지역에서만 23건의 신고가 접수됐으며 가축 180마리가 들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대대적인 포획작업을 벌여 지난해 중산간 지역에서 640마리를 포획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들개들이 가축은 물론이고 야생 노루를 비롯해 다양한 야생 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멧돼지 역시 개체수가 늘어나 해발 1700m 고지대까지 점령해 한라산 식물생태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골프장 인근이나 저지대에 자주 출몰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제주지역 자생 멧돼지는 1900∼1930년 즈음에 멸종했다. 현재 제주에 서식하는 멧돼지는 중국 계통으로 2000년대 초 사육장을 탈출해 야생에 적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시 한림읍 비양도에서는 식물 생태계를 교란하는 흑염소 포획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주민 쉼터이자 운동공간인 제주시 사라봉에서는 버려지거나 방사된 토끼가 이미 터를 잡은 상태다. 한라산 제주마 방목장에서는 방사된 꽃사슴이 야생노루와 함께 풀을 뜯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들개, 멧돼지, 사슴 등 몸집이 큰 포유류뿐 아니라 취미로 기르던 열대 뱀과 도마뱀, 심지어 악어까지 야외에서 발견되고 있다”며 “방사하거나 유기할 경우 생태계에는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계도 활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시 오라동 계곡 관광지#들개#방사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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