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 상황이 팬데믹(대유행)에서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더 이상 우리 몸에 ‘낯선’ 감염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1099일 만인 23일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엔데믹에 맞춰 방역체제도 바꿔야 할 시점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23일 0시 기준 3000만8756명으로 집계됐다. 검사를 통해 확진되지 않은 숨은 감염자까지 합치면 국내 누적 감염자는 3600만 명(인구의 70%)에 달한다. 여기에 높은 백신 접종률이 더해져 국민 100명 중 99명(98.6%)이 코로나19 항체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엔데믹 전환이 가능해진 가장 큰 이유다.
팬데믹 초기 1%를 넘던 코로나19 치명률도 최근 0.07%까지 떨어졌다. 백신 접종과 먹는 치료제 도입으로 코로나19 치명률이 인플루엔자(독감)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제는 일상적인 방역의료 체계 안에서 관리가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겨울철 독감이 유행한다고 국가 차원에서 강제적인 방역 조치를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엔데믹 전환에 대한 논의는 이달 27일 이후 본격화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날 국제보건긴급위원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1월 내려진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선언을 해제할지를 논의한다. 이날 WHO의 결정은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역당국도 WHO 결정에 따라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하향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WHO가 비상사태를 해제하면 (확진자에 대한) 격리 의무 해제를 전문가와 논의해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WHO 27일 비상 해제땐, 국내 ‘7일 격리의무’도 완화될 듯
코로나, ‘엔데믹’ 임박
법정감염병 등급 2→4급 조정하고 독감처럼 일상적 관리로 전환 검토 美 FDA도 “매년 1, 2회 백신 접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3년간 ‘알파’ ‘델타’ ‘오미크론’ 변이 등으로 모습을 바꿔 가며 국내에서 7차례의 대유행을 일으켰다. 한국은 설 연휴 기간 미국 인도 프랑스 독일 브라질 일본에 이어 세계 7번째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섰다. 다만 한국은 진단-추적-치료(Test-Trace-Treatment)로 이어지는 ‘3T 방역’을 통해 인명 피해를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타미플루 주듯 먹는 치료제 처방해야
2020년 이후 국내에서 코로나19 감염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3만3245명(24일 0시 기준)이다. 누적 확진자가 3000만 명을 넘은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 대비 사망자가 적다. 우리의 절반 수준인 인도의 경우, 집계가 원활하지 않았을 뿐 실제 사망자는 공식 통계의 10배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의 엔데믹(풍토병화)이란 인플루엔자(독감)처럼 주기적으로 유행하지만, 일상적인 보건의료 체계 안에서 관리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다만 엔데믹 전환 이후 희생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먹는 치료제에 대한 접근이 쉬워야 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의 경우 확진되는 즉시 먹는 치료제를 처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8∼14일) 60세 이상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먹는 치료제인 ‘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의 처방률은 36.1%다. 고위험군 3명 중 2명은 여전히 치료제 없이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는 뜻이다. 일선 의료진이 부작용을 우려해 먹는 치료제 처방을 꺼려 좀처럼 처방률이 높아지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인류는 먹는 치료제를 활용해 엔데믹을 끌어낸 경험이 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치료제 타미플루가 보급된 이후에야 이 사태가 종료됐다.
또한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뒤를 이을 또 다른 신종 감염병, 이른바 ‘디지즈 X(Disease X)’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필두로 신종플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신종 감염병이 5, 6년 주기로 발생해 온 만큼 다음 감염병도 수년 안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는 권역별로 감염병 전문병원을 짓겠다고 했지만, 아직 한 곳도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비상사태 해제 시 격리도 완화될 듯
WHO는 27일 국제 보건 긴급위원회를 열고 코로나19에 대한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언을 해제할지 결정한다. 방역당국은 WHO가 비상사태 해제를 선언할 경우 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을 홍역, 결핵 등과 같은 ‘2급’에서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은 ‘4급’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코로나19를 ‘독감처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확진자에게 부여되는 7일간의 자가 격리 의무도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주요국에서도 코로나19 엔데믹이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23일(현지 시간) 코로나19 백신을 독감 백신처럼 매년 1, 2회 접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건강한 성인은 연 1회, 어린이와 노인 및 면역저하자는 2회씩 코로나19 백신을 맞도록 한다. 일본도 4, 5월쯤 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을 현행 ‘2류 상당’에서 독감, 풍진 등과 같은 ‘5류’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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