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에서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팬데믹(대유행)에서 엔데믹(풍토병화)으로 향해가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국내에선 오는 30일 실내마스크 1단계 해제에 이어 ‘확진자 7일 격리’ 완화·해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이번 봄쯤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대폭 낮춰 대부분의 방역정책을 해제하기로 했다.
미국은 엔데믹에 맞춰 예방백신 연례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번주 회의에서 ‘비상사태’ 선언을 해제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각국의 엔데믹 전환 움직임은 한층 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개량, 사회적 면역력 확보, 치명률 하락, 의료대응 체계 안정화 등이 복합적으로 기능하면서 결국 독감과 비슷하게 유행이 반복되는 토착 감염병을 향해 가는 것이다.
다만 코로나19 엔데믹은 자율과 일상의 회복이라는 측면과 동시에, 확진자 유급휴가의 폐지나 예방접종·치료 비용 자부담 전환 등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해주거나 코로나19라는 질병 부담을 복지체계가 보완해줄 방법을 찾는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WHO 이번주 ‘비상사태’ 해제 논의…일본, 감염병 등급 하향 착수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7일 국제보건긴급위원회를 소집해 지난 2020년 1월 내려진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선언을 해제할지를 논의한다. 이날 WHO의 결정은 전 세계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엔데믹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예정이다.
국내 방역당국도 WHO 결정에 따라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하향 조정할 방침이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WHO 비상사태를 해제하면 격리 의무 해제를 전문가와 논의해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대중교통과 의료시설, 감염취약시설 등의 마스크 착용 의무도 완전히 해제될 시점을 위기 단계 또는 법정 감염병 등급의 하향 조정이 가능할 때라고 밝혔다. 이는 현행 7일 격리 해제를 논의할 수 있는 조건도 된다.
각국은 백신 접종도 비상 대응에서 벗어나 일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3일 일부 어린이·노인·면역저하자 등은 연 2회, 그 외 건강한 성인은 연 1회 접종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외부 자문단에 맡긴 상태다.
독감은 매년 봄 WHO가 그해 유행할 바이러스를 예측 후 발표하고, 제약사들이 이에 맞춘 백신을 만드는 방식이다. 코로나19 또한 이와 유사한 방식이 될 전망이다.
국내 방역당국도 이미 ‘n차 접종’ 대신 ‘동절기 추가접종’으로 전환해 연례 접종을 대비하는 중이다. 연례 접종으로 전환하면 독감·홍역 등 현재 17종인 국가 필수예방접종(NIP) 대상에 추가된다. 접종 횟수나 대상자, 시기 등은 예방접종 전문위원회 등을 거쳐 구체화한다.
이웃나라 일본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최근 코로나19를 현행 ‘2류 질병’에서 ‘5류 질병’으로 등급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도록 후생노동성 장관 등에게 지시했다.
기시다 총리는 “원칙상 올봄부터 5류 질병으로 조정할 방침”이라며 “구체적인 일시는 현장 준비에 따라 조정하겠지만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실내마스크 해제 및 7일 격리 폐지 등이 함께 시행될 전망이다.
◇방역체계 전환…“자율에 맡길 수 있지만 그럴 만한 사회환경도 필요”
한국은 7차례의 대유행이 발생했고, 세계에서 7번째로 누적 확진자가 3000만명을 넘었지만 이른바 ‘3T 방역’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신 접종 확대와 먹는 치료제 적극 투여로 치명률도 지난 12월 0.08%까지 떨어졌다. 일상적인 의료체계 안에서 독감처럼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다만 독감처럼 관리하기 시작하면 당장 마스크의 착용 여부처럼 이제 국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적용해야 할 상황도 늘어나게 된다.
확진자 격리 의무가 사라지면 직장에서 부여하는 유급 휴가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서 격리자에 지급하는 생활지원비도 사라진다. 예방접종 역시 고위험군이 아닌 경우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입원 등 치료비 역시 마찬가지다.
화이자와 모더나 등 백신 제조사들은 엔데믹으로 전환시 정부의 대량 구매가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해 백신 가격을 4~5배 올려 100달러 안팎에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 5일치 가격은 530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에서 일정 부분 부담하겠지만 본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엔데믹 전환이 급격하게 진행될 경우 사회경제적 파장이 상당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격리 7일 의무 같은 방역 조치를 점진적으로 완화하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사회적 여건도 충분히 고려하자는 취지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뉴스1>에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거나 몸이 안 좋다면 쉴 수 있도록 근무수칙, 더 나아가 (새로운) 정책으로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개인의 책임도, 사회적 논의도 다시 이어가야 할 때다. 사회적으로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소 주간 일평균 감염자가 1만명 밑으로 떨어지거나 전염력이 떨어져야 격리기간을 줄일 수 있다”며 “의무 격리를 없애면 근로자의 ‘아플 때 쉴 권리’, 유급휴가가 사라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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