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 인터뷰 / ‘IB프로그램 전도사’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교육목표-평가 괴리 없애려면 한국서 IB 프로그램 도입 필수
교육 장점 극대화 인프라 믿고 패러다임 변화로 날개 달아야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국제바칼로레아(IB) 프로그램 전도사다. 그는 한국에 IB의 씨앗을 뿌렸을 뿐 아니라 안착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의 IB 순항과 제주의 IB 실시, 경기 및 부산의 IB 도입 배후에도 모두 이혜정 소장이 있었다. 대구의 교사들은 이 소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란 1968년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인 IB 사무국이 개발, 운영하는 국제 공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프랑스의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관계가 없다. 탐구기반 학습을 통해 자기 성장을 추구한다. IB는 지난해 7월 기준 세계 160개국 5500여 초중고에서 실시되고 있다(본보 2022년 12월 29일자 참조). 교육공학 박사인 이 소장은 2014년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란 책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 자기 생각을 갖기보다 타인의 생각을 따라가는 교육이 서울대에서도 일어나는 현실을 비판한 바 있다.
IB의 확산은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윤 정부는 교육을 통해 인구 증가와 지역균형발전을 꾀하는 교육자유특구를 구상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의 인구 증가는 표선초·중·고의 IB 실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구 역시 전국의 많은 학부모로부터 IB 문의를 받고 있다.
6일 동아일보에서 “교육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데 조금은 금이 간 느낌을 받는다”는 이 소장을 만났다.
교육 목표와 괴리된 평가 바로잡아야
-IB 프로그램을 주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한국 교육은 훌륭한 목표가 있지만, 정작 평가가 목표를 측정하지 못하는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IB 프로그램을 도입해 목표와 평가의 괴리를 없애야 합니다. 저는 IB 교육을 받았던 첫째 아이와 한국 교육을 받은 둘째 아이와의 차이를 온몸으로 체감했습니다. 큰아이는 중학교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IB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제주국제학교로 전학 갔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적응하고 난 뒤에는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둘째 아이는 국사시험에 나오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의 순서를 알았지만, 전쟁 후 평화를 위한 합의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두 아이의 차이를 가져온 교육이 서울대에서도 교수들의 생각만 추종하려는 학생들을 길러낸 것과 연관돼 있다는 생각에 IB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2017년에 쓴 ‘대한민국의 시험’에서 IB 교육의 강점을 설명했습니다.” 이 소장은 큰애 뒷바라지를 위해 제주에 머물렀던 3년 동안 두 권의 책을 냈는데 처음 낸 책이 위에서 언급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이다.
-평가에서 IB와 한국 교육은 어떻게 다릅니까.
“IB 평가의 4분의 1은 지식의 숙지 정도를 측정하고, 4분의 3은 지식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어떻게 비판적 창의적 통찰적으로 꺼내는가를 봅니다. 반면 한국 교육에서 평가의 대상은 100%가 주입된 지식의 양입니다.”
-IB를 실시하고 있는 지역에서 평가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했습니까.
“한국은 점수가 최고의 공정성이다 보니 정성평가가 위주인 IB에서 과연 이게 통할지 학생도 교사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해보니까 믿을 만하다는 신뢰가 형성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신뢰의 자본을 축적하면 IB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아져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창의력과 비판적인 사고는 누구에게나 필요
-두 교육의 차이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까.
“한국 교육은 거대한 피라미드 하나를 향해 전 학생들이 질주하게 만들고 있지만, IB는 자신만의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성장하게 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경쟁을 하게 합니다. IB는 어떤 수준에 있는 학생이라도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그것을 개발할 수 있게 합니다.”
-IB가 모든 학생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의력과 비판적인 사고, 나만의 논리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설거지에도 창의력이 들어가면 더 나은 식기세척기가 만들어질 수 있지요. 2017년 제가 충남도교육청 등과 충남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내신과 창의력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자질은 창의력이지만 현재 한국 교육으로는 보석이 있는 원석을 놓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에 IB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시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지금까지 먹혔던 교육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이를 교육 패러다임 변화로 극복해 날개를 달아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와 뛰어난 교사,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문화 등 교육이 발전할 수 있는 훌륭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IB가 가세하면 한국 교육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 흐름을 놓친 구한말처럼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나서 교육개혁을 이끌었고, 영국은 총리를 지냈던 토니 블레어가 우리의 수능인 에이레벨(A-LEVEL)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퇴물이 됐다면서 바꾸자는 주장을 해 공감을 얻었습니다.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도 지도자들이 앞장서 교육을 바꾸는데 우리는 생각만 있지 바꾸려는 노력이 없습니다.”
IB 반대 논리는 오해에서 비롯
-진보 쪽에서는 IB를 귀족 교육, 상위권 교육, 사교육 폭발 교육, 교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교육, 외국에 돈을 내야 하는 교육 등으로 표현하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말을 토론회 갈 때마다 듣습니다. 저는 반대하는 분들에게 최초로 IB를 도입하자고 한 쪽은 극진보였다고 말해 드립니다.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인 이석문 전 제주도교육감도 교사 시절 IB 교육을 하는 제주국제학교가 들어오는 걸 맨 앞에서 반대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감이 된 후 치열한 고민 끝에 2017년 광역 교육청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IB 교육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IB 교육을 통해 반대 논리를 넘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IB가 귀족 교육이나 엘리트 교육도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상위권 학생들만 받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기회균등 차원에서도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도 유의미한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강조합니다. IB를 한국어로 할 수 있으니 외국에 들어가는 돈도 많지 않고 그것도 학생이 부담하지 않습니다.”
-제주 표선고의 예를 IB 교육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로 자주 거론하시던데요.
“농촌에 있는 표선고는 사교육과 거리가 멀고, 그런 지역에는 대개 수포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IB 교육을 한 학기 받고 난 뒤 수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수학적 개념을 활용해 탐구 보고서를 쓰는 기말고사 과제를 하면서 수학과 친해진 거였죠. 한 학생은 2차 방정식과 2차 함수를 이용해 드론으로 농약을 살포할 때 가장 적정한 높이를 탐구했고, 또 다른 학생은 잔디밭에 스프링쿨러가 안 닿는 부분에 물이 가게 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IB에서는 자신만의 어젠다를 발전시키지만, 일반 학교는 문제로 평가를 하기에 이 학생들이 뭔가 모자란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교사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룬 IB
-IB가 대구에서 안착하고 있는 건 교사들의 노력 덕이라고 들었습니다. IB에 반대하는 분들의 편견은 왜 생겼을까요.
“주입식 교육만 받은 교사들이 창의적이지 않고, 일반 수업보다 몇 배는 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가능하냐는 의구심입니다. 그러나 교사들의 능력과 열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2017년 겨울 대구에서 백채경 장학사 등 3명이 생면부지인 저를 찾아와서 IB 교육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2010년부터 모임을 결성해 다양한 교수학습방법을 연구했는데 제 책을 보고 실마리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와 제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한국 교육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2018년 2개 학교에서 시작한 대구의 IB 프로그램이 올해 92개 초중고교로 확산할 수 있었던 것도 교사들의 열정과 엄청난 노력 덕분입니다. 더 중요한 건 교사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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