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덮친 한파]
공항서 밤새우고 100m 줄 서도… 임시 항공기 40편으론 역부족
배달업 종사자들 일 포기 속출, 양양 영하 43도 극한의 체감온도
“항공기 운항 재개 소식을 듣고 달려왔는데 비행기표를 못 구했어요. 대기표를 기다리는 중인데 정말 피가 마르네요.”
설 연휴에 가족 5명과 제주를 찾았던 박모 씨(38)는 25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발권 데스크 앞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한숨을 쉬었다. 강풍과 폭설 여파로 24일 김포행 항공권이 취소됐는데, 운항이 재개된 25일에도 표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회사에는 사정을 얘기하고 25일 연차를 냈다. 일이 밀려 있는데 내일 또 휴가를 내야 하는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 제주공항 이틀째 ‘북새통’
전날 출발편과 도착편이 모두 결항됐던 제주공항에는 이날 새벽 서너 시부터 비행기표를 구하려는 이들이 몰렸다. 항공편 운항이 재개된다는 소식에 전날 발이 묶인 4만3000여 명 중 상당수가 몰리면서 3층 항공사 카운터에는 오전부터 100m 이상의 줄이 생겼다. 전날 아예 공항에서 밤을 새운 이들도 128명이었다.
이날 제주공항은 오전 7시 도착편부터 운항이 재개됐다. 항공사들은 임시편 제주 출발 항공기 40편(9203석)을 포함해 모두 536편을 운항했다. 마지막 항공기 운항 시간도 평소보다 2시간 연장해 이날 하루만 5만 명 이상이 제주를 빠져나갔다. 제주공항 관계자는 “발이 묶였던 4만여 명과 오늘 예약자 4만여 명을 합친 8만여 명 중 70∼80%가량이 제주를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남은 1만∼2만 명가량은 여전히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26일 이후 떠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주공항 곳곳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인천에서 온 귀성객 류모 씨(31)는 “고향이 제주라 여러 차례 오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항공사에선 내일도 좌석이 나올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도에 사는 김모 씨(60)는 “김포공항을 통해 25일 해외로 나갈 예정이었는데 어제 김포행이 결항됐고 오늘도 표를 못 구해 결국 일정을 취소했다”고 했다.
● 올겨울 최강 한파 서울 체감온도 영하 29도
설 연휴 후 첫 출근일인 25일 전국에는 올겨울 ‘최강 한파’가 찾아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 최저기온은 영하 18.9도로 올 들어 가장 낮았다. 강원 철원은 최저기온이 영하 28.1도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바람이 불면서 체감온도는 더 떨어져 강원 양양 서면은 새벽 한때 체감온도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영하 43.3도까지 떨어졌다. 서울 체감온도도 영하 29도까지 떨어졌다.
경북 지역 곳곳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낮은 1월 기온을 나타냈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경북 상주시(영하 16.8도), 경주시(영하 13.9도), 영덕군(영하 14.3도) 청송군(영하 19.5도)은 1월 기온으로는 관측 이후 가장 낮은 기록을 경신했다. 강원 고성군 등에선 바닷물이 얼어 얼음기둥이 관측됐다.
역대급 한파 등으로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24일 오전 8시경 충북 진천군의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선 80대 여성이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졌다. 계량기 동파 등도 이어졌다. 중대본에 따르면 23일부터 이날 오전 11시까지 전국에서 계량기 동파 140건이 발생했다.
한파에 일을 포기한 배달업 종사자도 적지 않았다. 우모 씨(41)는 24일 저녁 서울 구로구까지 배달을 나갔지만 배달 건수가 평소의 4분의 1로 줄고, 추위에 오토바이를 몰기가 어려워지자 중간에 일을 접었다.
폭설 피해도 이어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후 1시까지 경북 울릉군에 76.5cm의 눈이 내렸다. 현지 소방 관계자는 “25일 오전 3시 반 울릉군 저동에서 화재가 발생해 상가 등 3곳이 전소됐다”며 “폭설로 소방차량의 진입이 어려워 의용소방대가 직접 호스를 들고 현장에 진입해 불을 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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