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유대인 실험을 벌였던 나치 장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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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나치로부터 해방된 1945년 1월 27일을 기념하여 유엔이 지정한 ‘유대인 대학살 국제 추모의 날’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0년 거대한 가스실과 시신 처리 시설을 갖춘 대규모 집단 처형소로 개발되었고, 1942년 3호를 건설하면서 강제노동수용소로도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끌려와 강제 노동에 동원되는 과정에서 노인이나 장애인, 병든 사람이나 어린이들이 살해됐습니다. 주기적으로 기아와 학대로 허약해진 사람들을 선별해 제거했으며 일부는 의학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 지옥의 한가운데 요제프 멩겔레(1911∼1979·사진)가 있었습니다.

멩겔레는 나치 친위대의 장교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의사였습니다. 20대 때 독일 뮌헨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인종주의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그 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대에서 의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1933년에는 나치 돌격대에 자원 입대해 열렬한 나치 당원이 됩니다. 1934년 유전생물학 및 인종위생학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이 시기 그의 논문에서 나치 우생학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배정된 멩겔레는 수용소로 실려 온 유대인 중 바로 죽일 사람과 강제노역에 동원할 사람을 선별하는 일을 했습니다. 독가스실 운영을 지휘했으며, 이전부터 자신의 관심사였던 인종 연구를 위해 유대인 수용자들을 생체 실험에 동원했습니다.

멩겔레가 이끌던 연구진은 수용자를 상대로 여러 의학 실험을 자행했는데, 매우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과학적 가치가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는 눈동자 색깔을 바꾸기 위해 아이들의 눈에 염색약을 주사하여 실명시켰고, 마취 없이 늑골을 적출하는 실험으로 사람들을 극도의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수용자들 사이에서 멩겔레는 ‘죽음의 천사’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멩겔레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수용소를 탈출해 가명을 쓰며 숨어 지내다 아르헨티나로 도주하고, 1959년에는 다시 브라질로 이주해 그곳에서 죽습니다.

말년의 그는 나치의 A급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잡혀 재판을 받은 뒤 사형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신질환과 각종 신체질환을 앓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훗날 다국적 수사팀은 한 무덤에 남겨진 치아의 DNA 등을 분석해 멩겔레가 예전 나치 동료였던 볼프강 게르하르트의 이름으로 살다가 197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은 인류가 저지른 20세기 최대의 치욕스러운 사건으로 꼽힙니다.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성, 혐오와 광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멩겔레 같은 범죄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일 것입니다.

#유대인 실험#아우슈비츠 수용소#나치#요제프 멩겔레#죽음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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