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전북의 한 지역농협 직원 이 모 씨(32)가 간부로부터 지속적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하며 자신의 일터 앞 주차장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그의 친동생이 형의 사망 이후 이야기를 전했다.
고(故) 이 모 씨의 동생인 이진 씨는 26일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 인터뷰에서 “2022년 A 센터장이 부임하면서 지속적인 괴롭힘이 시작됐고, 지난해 9월 27일 1차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며 “(결국 형은) 본인의 근무지였던 농협 자재 창고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유족에 따르면 이 씨는 2009년 농협에 입사했고, 지난해 1월 간부 A 씨가 센터장으로 부임한 이후 A 씨 등 상사 2명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A 씨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업무 지시에 이 씨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자 “직급이 뭐냐, 이렇게 일을 하니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라는 등 모욕적인 언사를 수없이 들었다.
A 씨는 이 씨가 직장인 농산물센터 앞에 주차를 했음에도 “왜 주차를 편하게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고, 지난해 10월 이 씨가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는 “매수철인 10월에 결혼을 하는 농협 직원이 어디 있느냐, 정신이 있는 거냐”는 등의 폭언을 하기도 했다.
또 이 씨의 가정형편이 부유하다며 “부자라서 재수가 없다”, “부자니까 (사비로) 킹크랩을 사라”, “왜 직장에 있는 코로나19 신속검사키트를 사용하느냐, 다시 채워 놔라”는 등의 말로 조롱하기도 했다.
이 씨는 이후로도 수개월 간 이어진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결혼을 2주 가량 앞둔 지난해 9월 27일 처음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당시에는 다행히 가족의 신고로 발견돼 목숨을 구했고, 농협 측은 외부 노무사를 선임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농협 측은 지난해 12월 5일 정식조사결과 심의위원회를 통해 A 씨 등 2명에게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농협이 고용한 외부 노무사의 조사결과 보고서에 기초한 심의위원 조사 결과 혐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씨는 괴롭힘으로 인한 우울증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고, 결국 지난 12일 자신이 일하던 농협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해 사망했다.
유족은 농협 측이 조사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등을 분리하지 않아 2차 가해로 인해 이 씨가 또다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또 농협이 고용한 외부 노무사가 A 씨와 과거부터 알던 사이라서 농협 측에 유리한 판결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생 이 씨는 형이 당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인격 모독과 그냥 조롱 등은 기본이고, 상하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찍어 누르는 등 (행위를 했다). 금품 갈취 정황도 있었다. 유언장에 의하면 (형은 상사들에게)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킹크랩을 사오라는 지시도 받았고, 실제로 택시를 타고 직접 가서 사비로 사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형이 대장·항문 질환이 있었는데 (상사들이) CCTV로 개인 동선을 파악, 화장실 가는 횟수까지 확인해 면박을 주기도 했다. 사생활마저 없었다.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였다”고 덧붙였다.
동생 이 씨는 또 “형이 확실한 증거를 위해 본인 업무용 PC에 그들의 행동·말투를 시간·날짜와 함께 세세하게 기록해놓은 일기장이 있었다. 노무사를 믿고 다 모두 이야기했는데, 유급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뒤 컴퓨터가 모두 폐기 처분돼 있었다”면서 증거 인멸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노무사는 “A 씨와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이 씨에게 유리한 증거자료와 참고인을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제출하지 않아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 씨 컴퓨터에 증거가 있다는 것을 A 씨에게 전달한 사실은 전혀 없다. 조사 과정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제가 속이거나 조작하거나 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농협 측도 이와 관련해 노무사와 가해자의 관계를 모르고 선임했고, 둘 사이가 아주 가깝지는 않아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농협 측은 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이 씨 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추가 감사나 재발 방지대책 마련 등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들과 괴롭힘을 방관하고 묵인한 책임자들을 상대로 한 진정서를 노동부와 농협중앙회 감사실에 제출한 상태다.
동생 이 씨는 “형은 순진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뭐든지 퍼주려 하고 본인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눠주는 사람이었다”며 “군대에 가선 열심히 하다 다쳐 국가유공자가 됐다. 초중고 땐 레슬링을 해 전국체전에서 메달도 많이 땄다. 대학에선 과대표까지 하는 등 리더십 있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항상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직장에서도 A 씨 부임 전까지는 직원들이 집에 와서 같이 놀고 부모님께도 소개해주는 등 재미있게 회사 생활을 했다. (농협 측이) 정식 인사 발령을 낼 수 있음에도 구조적인 지시만 했다. 사망 2주 전부터 가해자들과 어떠한 분리도 되지 않았다. 평소 카톡을 보면 형은 그분들의 이름 세 글자만 봐도 치가 떨리고 온몸이 떨린다고 했다”며 분개했다.
끝으로 동생 이 씨는 “크고 작은 직장 내 괴롭힘을 겪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저희 형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면서 “물리적인 폭력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가장 심하다. 이번 일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관련법이 확실하게 개정돼 모든 사람이 피해 보지 않고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 농협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감독은 노동부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특별근로감독으로,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전주지청에서 특별근로감독팀을 구성해 이날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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