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는 생활필수품과 성격 비슷… 가격 올라도 소비량 차이 없어
가격 올릴수록 이윤 남기는 구조… 사치재 택시는 가격 탄력성 높아
버스, 지하철 등 대체 수단 많아 가격 상승 시 택시 수입 감소
최근 뉴스와 기사에서 새로운 명칭의 세금이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횡재세(windfall profit tax)’입니다. 직역하면 ‘바람에 날려 온 이익’ 또는 ‘굴러 들어 온 이익’에 대한 세금 정도가 될 것 같고, 의역을 조금 하면 ‘일하지 않고 얻은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이 될 듯합니다.
경제적 개념으로 정의하면 좀 깁니다.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얻은 법인이나 자연인에 대해 통상 적용되는 법인세나 소득세 외에 추가적으로 징수하는 세금으로,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수익에 부과되는 일종의 초과이윤세’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많이 벌었는데 이건 당신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라는 겁니다.
●횡재세 도입 논란
횡재세가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거론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원유 가격이 오르니 휘발유, 경유 가격도 오르고,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니 조리용 가스, 난방비가 오릅니다. 가정과 기업이 고(高)유가 부담으로 힘들어한 2022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지난 한 해 수입과 지출을 정산해 보니, 미국 엑손모빌의 영업이익은 557억 달러(약 69조 원), 미국 셰브런은 354억 달러(약 44조 원), 영국 셸은 398억 달러(약 49조 원)로 천문학적 수준의 이윤을 거뒀습니다.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기후 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거론되면서 기존 석유회사들이 이미지 악화와 적자 누적 등 경영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작년에 극적 반전을 이룬 겁니다. 대다수의 고통 속에서 거둔 거대 이윤이니 횡재세를 통한 재분배가 이야기되는 겁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듭니다. 가격이 상승하면 공급자에 해당하는 기업은 항상 이런 횡재를 누리는 걸까요? 이달 1일부터 서울 중형택시 기본요금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1000원(26.3%) 올랐고, 시간대별 구간 요금도 적게는 20%, 많게는 40% 정도 올랐습니다.
택시 요금의 인상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인상 전 요금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기사를 보면 택시 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택시 기사의 수입이 오히려 줄었다는 겁니다. 아이러니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석유회사의 횡재와 비교해 봅시다. 똑같은 가격 인상인데 석유회사는 횡재를 하고 택시 기사는 수입이 줄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경제학에서는 가격 탄력성(elastic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가격이 변화할 때 얼마나 순발력 있게 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생활필수품은 가격이 오르더라도 구매량을 줄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가격이 내렸다고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생활필수품에 대한 수요는 가격 변화에 둔감합니다.
사치품은 정반대입니다. 꼭 사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 가격이 오르면 구매를 훗날로 미룰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격이 내리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사치품에 대한 수요는 가격 변화에 민감합니다.
여기에서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봄맞이 세일 시즌을 준비하는 백화점 경영자라면 생활필수품과 사치품의 가격 할인 정책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답은 사치품의 할인율은 높게 하고, 생활필수품은 할인을 안 하거나 할인을 해도 조금 하는 것입니다. 사치품은 가격 인하로 인한 판매 수입 감소를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판매량이 많이 증가하겠지만, 생활필수품은 판매량이 많이 증가하지 않아 가격 할인으로 인한 판매 수입 감소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가격탄력성이 좌지우지
석유와 택시를 가격 탄력성 개념을 활용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경유 가격이 오른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야 할 길을 대구에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타던 차를 팔고 전기차로 바꿀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없습니다. 결국 석유 가격이 오르더라도 소비자는 석유 소비량을 순발력 있게 줄이지 못합니다.
반면 택시 요금이 오르면 분당에서 잠실까지 평소 택시를 이용하던 승객도 순발력 있게 택시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하철, 버스 등 택시를 대신할 대중교통 수단이 많으니까요. 정리하면, 석유는 대체 수단 선택이 어렵고 생활필수품에 가까운 성격이 있어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매우 낮으나, 택시는 대체 수단이 많고 사치품에 가까운 성격이 있어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매우 높은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석유는 가격이 오르더라도 판매량 감소가 거의 없어 가격을 올리면 올린 만큼 석유 회사는 막대한 이윤을 거두게 됩니다. 반면 택시는 요금이 오르면 가격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승객들이 대거 빠져나가 택시 기사의 수입은 오히려 감소하게 됩니다.
횡재세를 거론할 만큼 지난해 석유회사가 고유가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은 석유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매우 낮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전 세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석유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매우 높으며 대체 에너지의 보급은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임을 시사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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