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어둠에 작은 ‘등불’ 하나 밝히는 게 시(詩)인지도 모릅니다. 강제 공출과 징병으로 암울했던 일제 말,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윤동주(1917∼1945·사진)입니다.
일제강점기 기독교와 교육, 독립 운동의 중심지였던 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스물두 살인 1938년, 연희전문(연세대학교 전신) 문과반에 입학합니다. 최현배 선생이 조선어를 가르치고 있던 그곳에서 동주는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꿈을 키웁니다. ‘무서운 시간’, ‘태초의 아침’, ‘십자가’, ‘또 다른 고향’ 등의 시편들이 이때 태어납니다.
동주가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였습니다. 전쟁 물자 동원령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전장에 강제로 끌려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동주는 고민 끝에 일본 유학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쓴 시 19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자필 시집을 만들려고 했지만 스승 이양하가 출판을 미룰 것을 권합니다. 시 몇 편이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어려울 거라는 것과 일본 유학을 앞둔 동주의 신변이 위험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동주 생전에는 시집 출판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1942년 도쿄 릿쿄대 영문과에 들어갔다가, 교토의 도시샤대 영문학과로 전학한 동주는 교토제국대에 다니던 사촌 송몽규와 재회합니다. 일제 경찰의 감시망 안에 있던 송몽규 때문에 동주 역시 그때부터 일경의 감시를 받게 됩니다. 1941년 실시된 일제의 개정치안유지법은 ‘준비 행위’만 했다고 판단되어도 검거가 가능한 악법이었습니다. 1943년 동주는 이 법망에 걸려 체포되고 1944년 교토지방재판소에서 개정치안유지법 제5조(독립운동)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사촌인 송몽규 역시 같은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됩니다.
일본 패망이 코앞이던 1945년 2월, 동주는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무슨 뜻인지 모르나 큰 소리를 외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반 년 뒤 일제는 패망합니다. 그가 세상을 뜨고 3년이 지난 1948년, 친구 정병욱이 보관하고 있던 시 19편과 동주의 유품 속에 있던 시 12편을 모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습니다.
16일인 어제는 윤동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78주기였습니다. 윤동주는 생전에 유명하지도 않았고 독립투사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그는 단지 제국주의에 맞서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식민지 지식인 청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청년을 죽일 만큼 일본 제국주의는 폭압적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삶은 짧았지만, 음울하고 가혹한 시대 한가운데에서 치열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순결한 시어들은 오늘날까지 맑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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