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택배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도 않고, 놀고 먹으면서 일한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다.”
오전 9시 서울 종로구의 한 실버택배 사무실에서 만난 택배원 박경선씨(73)는 팔꿈치가 닳아서 해진 파란색 패딩을 턱 끝까지 올린 채로 난로 앞에서 몸을 녹였다. 그는 이미 오전 8시 장례식장 근조기 배달을 마치고 돌아와 다음 행선지인 평택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박씨의 하루는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45년 동안 남대문 시장 앞에서 카메라 장사를 하던 그는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주고 실버택배를 시작했다. 이제 시작한 지 10개월차라는 그는 “처음에는 아주 눈물 고일 만큼 고됐다. 그래서 이것을 계속 해야 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집에서 쉴 수만 없었던 그는 결국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박씨는 “사실 이렇게 택배하는 사람들 보는 시선이 곱지도 않고, 놀고 먹으면서 일한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다”며 “그래도 자식들을 보는 체면도 있고 집에서 아내 고생만 시킬 수 없어서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지하철 적자의 원인으로 꼽히면서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이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하철 무임승차 찬성과 반대, 그 틈바구니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실버 지하철 택배원들의 노동도 녹록지 않았다.
◇실버택배원 30%는 80대…“나도 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들어”
박씨가 일을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 중에 또하나는 실버택배원들의 고령화였다. 그는 “택배원의 약 30%는 80대 어르신들인데 아직 70대 초반인 자신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집에만 있으면 무기력해지기 마련인데 하루에 몇 푼 안 돼도 돌아다니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평택역으로 길을 나서기 전 실버택배 요금을 적어도 3만원은 받아야 되는 것 아닌지 배달 접수자에게 따져 물었다. 교통비는 필요 없어도 서울 종로에서 거의 왕복 4시간 거리인데 2만8000원을 받는 것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박씨는 “우리들은 지하철을 공짜로 타니까 손님들이 (실버택배를) 싸게 이용한다고 쳐도 회사에 30% 수수료를 주고 나면 정말 별로 남는 것이 없다”며 “지금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다 70세 이상이라 일자리가 없으니까 그나마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한참동안 지하철 노선도를 살펴보더니 2호선 을지로4가역에서 시청역 1호선으로 환승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루에 2만보씩 걷는다는 그는 시청역 환승 통로가 바로 나오자 아이처럼 좋아했다.
박씨는 “지하철을 매일 이용하니까 어느 칸에서 내리면 빨리 갈아탈 수 있는지 이제 좀 안다. 그래야 덜 걷고 덜 힘드니까”라며 “그리고 모르면 길은 꼭 젊은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도움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일하면서 살이 3kg이 빠졌다”며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벌어오는 월급 아까워서 아내가 잘 못 쓰겠다고 말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에너지 비축을 위해 1호선 평택행 노약자석에 앉아 쪽잠을 잤다. 잠깐씩 정신을 차릴테면 휴대폰 화면을 계속 확인했다. 혹시나 회사에서 문자로 다른 배달 신청건을 배부하거나 손님의 요청이 달라질 수도 있어서다.
그의 월급은 평균 120만~130만원대라고 했다. 초창기엔 100만원도 못벌었지만 이젠 이 생활에 적응을 하면서 배달 건수를 늘렸기 때문이다.
◇무임승차 연령 기준 사회적으로 논의해봐야 할 시기
박씨는 지하철 무료승차 나이대를 올리는 것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65세 이상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많이 사용하는 만큼 그분들의 생각도 들어봐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새벽에 나올때 보면 한 칸에 절반 이상은 60대 이상 노인”이라며 “다들 이런 데서 일하거나 청소노동자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기근 실버 퀵 지하철 택배 대표는 “옛날 70대랑 지금 70대는 차원이 다르다”며 “옛날엔 70대를 넘으면 쓰지도 않으려고 했는데 이젠 이 일을 하는 60대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80대도 건강하게 이런 험한 일도 많이 하니까 무임승차 연령을 이제는 시대에 맞게 좀 상향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60대의 일자리도 보장이 되어 있어야 교통비를 낼 수 있으니 그들이 일할 자리가 있는지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65세가 여러 가지로 고령 인구 기준으로 맞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며 “실질적으로 상향하는 것이 여러 가지 추세에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갖고 있던 것을 뺏는 것은 정책적으로 큰 부담이지만 우리가 큰 부담이 있는 것을 알면서 고치지 못하면 어찌 됐든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것도 맞다”며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할 시점에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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