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회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유능한 기자는 아니지만, 유일무이하게 해낸 것은 하나 있다. 바로 ‘네 아이 육아휴직’을 모두 사용했다는 점이다.
육아휴직 1년에 출산휴가 3개월을 더해 한 아이당 1년 3개월씩 네 번이었으니 회사를 나오지 않은 기간은 총 5년이다. 공무원이나 은행원 등 일부 직종 종사자들을 제외하고 일반 직장인 가운데 나만큼 긴 육아휴직을 쓴 사람은 아직까지 주변에서 보지 못했다.
그렇게 긴 육아휴직을 쓴 덕에 아이들 넷을 돌까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내 힘으로 키울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육아휴직 기간과 마찬가지로 내 경력공백도 5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 정부의 육아휴직 ‘조건부 연장안’ 왜?
자녀가 있는 근로자가 그 자녀 양육을 위해 사업주에 신청하는 휴직을 육아휴직이라 한다. 국내 육아휴직은 한 직장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한 직원이 만 8세 혹은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에 대해 신청할 수 있다. 남녀 근로자 모두 생(生)부모 여부와 상관없이 사용 가능하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에는 직장에서 급여를 주지 않는다. 대신 정부가 육아휴직급여를 지원한다.
현재 육아휴직 기간은 한 아이에 대해 최대 1년이다. 정부는 이 기간을 최대 1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단 아빠와 엄마가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쓴 가구만 적용 대상이 된다. 연장한 기간에 대해서는 육아휴직급여도 제공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런 소식에 부모들로부터 “(연장 기간을) 쓰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있어도 못 쓰는 그림의 떡”과 같은 불만이 쏟아졌다.
실제 정부의 제도가 시행되도 연장기간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공무원, 교사를 포함한 전체 육아휴직 사용자 수는 2012년 한 해 10만4996명에서 2021년 17만3631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만 0~8세 육아휴직 대상 아동수를 감안할 때 여전히 적은 수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직업군으로 보면 중소기업 근로자, 자영업자, 특수형태고용근로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부부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가구는 소수일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무급휴직이라면 경제적으로 부담도 크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연장을 하는 것일까.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쓸 수 있도록 기간을 연장하되 휴직이 너무 늘어나는 것은 막기 위해서다.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결국 근로자의 경력공백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마냥 좋을 수는 없고 기업이나 사회도 인력부족을 겪을 수밖에 없다.
● 육아휴직 4명 중 3명 여성…경력공백·독박육아 늘 가능성
현재 육아휴직 사용자의 대부분이 여성임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2012년 전체 육아휴직 사용자 중 3.5%에 불과했던 남성의 비율이 2021년에는 24.1%까지 늘어 고무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의 숫자에는 한참 못 미친다. 육아휴직자 4명 중 3명이 여성이다.
평균 육아휴직 사용기간도 여성이 더 길다. 일반 고용근로자(고용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지난해 육아휴직 평균 사용기간은 여성이 9.6개월, 남성이 7.3개월로 여성이 한 달 이상 길었다. 대부분의 가구에서 여전히 자녀의 주양육자는 아빠가 아닌 엄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기존과 동일하게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면 자연히 그 연장기간을 쓰는 사람은 남성보다는 육아휴직 사용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여성의 경력공백과 이른바 ‘독박육아’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경력공백은 회사 내 급여, 직급 격차로 이어진다. 현재도 한국의 남녀 근로자 임금격차는 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남녀간 성별 격차를 지수화한 2021년 국가성평등지수에 따르면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직장 내 관리자의 성비 점수는 100점 만점(남녀가 동등) 중 25.8점으로 전체 조사 분야 점수 가운데 국회의원 성비 다음으로 낮았다. 그만큼 직장 내 관리자급에 여성이 적다는 뜻이다. 여성의 경력공백이 길어지면 이런 격차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 비단 여성에게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연장기간 이용자가 여성에게 집중되는 만큼 남성은 육아에서 더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남성이 가장으로서 가구 내 주수입원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길게 쓰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육아휴직 연장의 전제로 ‘부부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라는 조건을 붙인 이유다.
그냥 기간을 연장할 경우 제도 자체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아직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렵거나 사용할 수 없는 직업군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기간을 늘리면 아직 육아휴직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질 것이다.
● 휴직 대신 적정근로·단축근로
그렇지만 많은 부모들이 육아휴직 기간 연장을 바라는 이유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풀타임 직장인의 경우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근로시간에서 줄곧 최상위권을 달려온 나라다. 빨라야 오후 6~7시인 퇴근시각에 잦은 야근, 휴일근무, 연장근무의 일상화로 맞벌이 가구에서 양가 부모님이나 베이비시터 같은 외부 인력의 도움 없이 일·가정양립은 꿈도 못 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상시에도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면 구태여 육아휴직을 길게 쓸 필요가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미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과 사용연한(만 8세까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근로시간을 전반적으로 줄이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이용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숙련된 근로자를 경력공백 없이 오래 쓸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안이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이용자는 지난해 기준 1만9466명으로 아직 육아휴직 이용자에 비해 턱없이 적다. 정부는 최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대상을 만 8세 이하 부모에서 12세 이하 부모로 확대하고 이를 시행한 기업에 주는 지원금 예산을 대폭 상향한다고 밝혔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긴급한 야근, 출장으로 발생하는 양육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돌보미 단시간 연계서비스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기사를 보고 괜스레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부모 중 누군가는 아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굳이 긴급하게 2시간 전 1시간짜리 아이돌보미를 신청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수요가 많고, 육아휴직 연장에 대한 요구도 크다는 건 아직 우리의 근로환경이 육아를 병행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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