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이공계 블랙홀 된 의대’ 시리즈를 통해 성적이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의대로 몰려가고 있지만 정작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분야에는 의사가 없는 현실을 집중 조명했다. 이에 대한 해법을 묻기 위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을 각각 14일 인터뷰했다. 이들은 국내 의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구성된 의정협의체에서 각각 정부와 의료계를 대변하고 있다.
박 차관과 이 회장은 “필수의료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데 공감했다. 이어 이구동성으로 ‘공공정책수가제’를 통해 필수의료 분야에 지급되는 보상을 늘리고,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병원들이 전문의(교수)를 더 채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18년째 3058명인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선 의견 차가 컸다. 2020년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파업을 강행했다. 이로 인해 정부는 필수의료 인프라 확충에 실패했고, 의사단체는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환자들은 꼭 필요한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실패가 된 셈이다.
이번에도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의협이 9일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것에 반발해 의정협의체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19일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우리 사회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필수의료를 살릴 다음 기회는 없다.
“의대 정원 늘려 필수의료 강화”
박민수 복지부 2차관 “병원도 협조를”
전문의 더 뽑아 전공의 부담 줄이고 공공정책수가 확대해 인력 충원 지원 교수 정원도 늘리도록 교육부와 협의
―지난달 말 필수의료 대책을 발표했지만 분만, 소아 등 일부에만 치중됐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 발표는 시작에 불과하다. 국민 누구나 골든타임 내에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이번 정부 임기 내에 마련하는 게 목표다. 일단 희귀질환, 중증 응급 정신질환 등에 대한 추가 대책을 하반기(7∼12월) 발표할 계획이다.”
―필수의료가 ‘돈 못 버는’ 과목이 된 이유가 뭔가.
“소아청소년과, 중증외상 같은 필수의료 과목뿐 아니라 지역의 필수의료가 무너진 데는 수요가 적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잠재적 환자 자체가 적어진다. 중증외상 분야의 경우 환자가 있건 없건 ‘항시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선 비용 부담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공정책수가’를 지급하는 것이다.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다 발생한 적자를 국가가 보전해 주는 공공어린이병원 사후보상제도가 대표적이다. 또 의료 수요 자체가 적은 지방 소도시의 경우 적자 폭이 더 크므로 보상을 더 얹어 주자는 것이 ‘지역수가제’다.” ―검사는 비싸고, 수술은 싼 기형적 건강보험 수가(건강보험에서 병원에 주는 진료비) 체계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맞다. 수가는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에서 나가는 만큼 한없이 올려 줄 수는 없다. 영상, 검사 분야에 비해 수술과 처치 비용이 낮게 책정된 부분은 조정을 통해 정상화해 나가야 한다. 급격한 조정으로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의료계와 절충점을 찾아 나가겠다.”
국내 건강보험 체계에서 수가 책정은 정해진 파이 안에서 ‘상대평가’로 이뤄진다. 한 분야의 수가를 올리면 다른 분야 수가는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박 차관은 “공공정책수가는 재정 투입을 늘려 지급하는 것이므로, 이 정책으로 검사 등 다른 분야에서 손해 볼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이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필수의료를 기피하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의 노동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건 결국 전문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선 병원들이 전문의를 더 뽑아 기존 교수진과 전공의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정부도 공공정책수가를 적극 확대해 병원이 인력을 추가로 뽑을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교수 정원도 늘릴 수 있도록 교육부와 적극 협의하겠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으로는 인력 공급 자체도 늘려야 한다.”
―인력 공급이라면 의대 정원 확대를 뜻하는 것인가.
“그렇다.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앞으로 점점 더 늘게 돼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2035년 우리나라에 의사가 지금보다 1만 명 더 부족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단기 대책이 보상 확대라면 장기 대책은 의대 정원 확대다.”
―의료계에선 의대 졸업생이 늘어도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의사만 더 늘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용 성형 분야는 수요가 계속 늘고 있으며, 수요가 늘면 공급(의사 수)도 느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다. 피안성 의사가 느는 게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분야와 필수의료 분야의 소득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서 의사들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공공정책수가를 대폭 강화해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이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고 투입해 수술 수가 높여야”
이필수 의협회장 “정부에 바란다”
뇌혈관 수술 수가, 일본의 20%에 불과 지방 의료난, 시니어 의사 활용해 해결을 필수의료 사고, 중과실 없으면 면책 필요
―정부가 최근 분만 및 소아 진료 보상 강화, 응급의료체계 개편 등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중증외상, 흉부외과 등 공급이 부족한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상이 꾸준히 강화돼야 한다. 정부의 방향성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
―수가는 결국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에서 나가는데, 무한정 높일 순 없지 않나.
“국내에서 뇌혈관 개두술(머리를 열고 하는 수술)에 책정된 수가는 일본의 5분의 1 수준이다. 이러한 수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려면 건강보험 재정의 틀 안에서 조정하는 게 아니라 국가 재정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듯’ 다른 분야의 수가를 깎아서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공의 과반이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 이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붕괴가 필수의료 기피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꼰대’ 같은 이야기지만 내가 수련받을 때(1980년대 후반)는 전공의 2년 차만 돼도 간단한 맹장염 수술 정도는 맡아서 했다. 지금 전공의들은 근무 시간은 길지만 잡무에 시달릴 뿐 이런 경험을 쌓기 어렵다. 대학병원들은 입원 환자들을 돌보는 입원전담 전문의를 뽑아서 전공의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전공의들이 교육과 수련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결국은 대학병원에 의사가 부족하단 얘기인데,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하지 않나.
“지금 의대 졸업생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진출하지 않는다. 이미 공급이 충분한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의 의사만 늘어날 뿐이다. ‘어떤’ 의사가 부족한지를 잘 보고, 지금 있는 의사를 부족한 분야로 진출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들었는데 의사 수를 늘리면 건보 재정에 부담이 더 커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구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명 늘면 1인당 의료비 지출이 2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 의사가 모자란 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정년 퇴직한 의대 교수 등 ‘시니어 의사’의 활용을 제안한다. 나이가 지긋한 선배 중에서도 현업에 남고 싶어 하는 분이 많다. 이분들이 고향에 내려가 의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하면 의료취약 지역을 상당 부분 커버할 수 있다.”
의료계에선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소송 등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점 때문에 위험한 수술이 많은 필수의료 분야 종사를 꺼린다고 말한다. 이에 의협은 필수의료 분야에 한해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기소나 형사 처벌을 면제하는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환자가 잘못되면 책임 소재는 가려야 하는 것 아닌가.
“모든 책임을 면제하자는 게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해서까지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건 과하다는 것이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의사와 간호사 등 7명이 기소되고 이 중 3명은 구속됐는데, 5년간의 재판 끝에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의료계에선 ‘소아청소년과는 가면 안 되는 곳’이란 인식이 굳어지고 말았다. 의료진이 위중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특례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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