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17살 샤오천(小·가명) 군은 학교에 다니는 게 너무 싫었다. 내성적인 데다 한국말도 잘하지 못해 친구도 없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점프’ 공부방 선생님을 만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이제는 한국말도 자신 있게 하고 공부하는 게 점점 재미있어졌다. 선생님 덕분에 고등학교 입학 면접도 잘 봐 합격했다.
#2. 김시아(15·가명) 양은 늘 우울했다. 남들에겐 있는 돈이 시아네 집에는 너무 없었다. 가난한 집도 싫고 학교도 싫고 공부도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울하지 않다. 공부에도 흥미가 생겼다. “대단하네~ 우리 시아, 이런 문제도 잘 풀고” 공부방 선생님의 칭찬 덕분에 아이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전국에 약 3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일주일에 2~3번, 8시간 동안 공부방 선생님을 만나 국·영·수 등을 배운다. 아이들은 이들을 ‘점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공부방 프로그램 중심에는 이의헌 대표(48)가 있다. 이 대표가 교육 소셜벤처 ‘점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한국에서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중 미주한국일보 기자로 뽑혀 10년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취재를 했다.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없지만 현지인보다 부족한 언어 실력 등으로 인해 스스로 자격지심을 느꼈다고 했다.
“언어 수준과 문화적 차이를 느끼며 스스로 주눅 들었어요. 그러면서 느꼈어요. 나도 여기서 ‘소수자’라는 걸요.”
주지사부터 불법체류자, 범죄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두루 만나며 이 대표는 더욱 소수자들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으로 망명한 한 탈북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한국에 사는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생각에 지금의 ‘점프’를 구상하게 됐다.
“더 나은 기회, 자유를 찾기 위해 두 아이와 함께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한 탈북자를 만나게 됐어요. 생사를 걸고 넘어왔지만 탈북자라는 이유로, 얼굴에 화상자국이 있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차별과 멸시를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하니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할 거란 생각이 들어 미국행을 결심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전 한국행을 결심했죠.”
그는 신문사를 관두고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공공정책대학원(케네디스쿨)에 입학했다.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동문들과 함께 지금의 ‘점프’를 구상했다. 그의 졸업 논문 주제는 ‘점프’ 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멘토와 대학생, 그리고 취약계층 아이들을 이어주는 교육 시스템’에 관한 내용이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 대표는 2011년 ‘점프’를 설립했다. 교육을 받는 대상은 취약계층,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등 비싼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선발된 우수한 성적의 대학생 봉사자들에게 지역아동센터에서 일주일에 3~4번씩 국어, 영어, 수학 등을 배운다.
봉사자들 역시 합당한 대가를 받고 일한다. 또한 이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멘토들과 연결돼 취업이나 고민 등을 상담받는다. 이렇게 학생-대학생 봉사자-멘토가 연결돼 있어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줌으로써 지속적인 선순환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 대표는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하면서 ‘장기간 교육’이라는 것에 초점을 뒀다. 기존에 있었던 ‘공부방’은 대학생 봉사자들이 자주 교체가 돼 아이들에게 상처만 남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이 대표는 “아이들이 ‘선생님, 1번만 오고 안 올 거잖아요.’ ‘어차피 선생님은 우리를 버릴 거다’라는 말을 하더라”고 했다.
이에 ‘점프’의 대학생 봉사자들은 1년간 아이들의 학습지도를 한다. 봉사자들과 아이들의 관계가 형성돼야 안정된 마음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철칙이다. 이후 아이들의 반응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그는 “한 아이가 어떤 봉사자에게 ‘선생님, 진짜 또 왔네요?’라고 했다고 하더라”며 “혹시 선생님이 변경되더라도 ‘점프’ 선생님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다소 안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을 받으며 아이들의 성적이 많이 오르기도 했다.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를 판정받은 안상현(가명·12) 군은 학교 선생님조차 포기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한 대학생 봉사자가 안 군을 가르치며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수학 공부에 매진하게 해줬다. 이후 안 군은 수학 100점을 맡기도 했고 학교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부천 이주 노동 복지 센터의 송연순 센터장은 “아이들이 수준별로 공부를 할 수 있고 소수그룹으로 진행이 돼 학습 효과가 정말 좋다”며 “성적표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학부모들이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센터에는 다문화가정, 난민 가정 아이들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교육 수준이나 삶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며 “‘점프’를 통해 공부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부족한 면이 채워지니 자신감도 생기고 정서적인 부분도 많은 회복이 되더라”고 덧붙였다.
수십 명의 학생들로 시작해 어느덧 3000명이 됐다. 서울·경기·인천 등을 비롯해 전국 지역아동센터에서 3074명(2021년 기준)의 저소득층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다. 대학생 봉사자도 10명에서 출발해 1000명이 가까워졌다. 대학 진학·취업 등은 꿈도 꾸지 못했던 청소년들은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과 직장인이 되었다.
이 대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사라진 사회가 되었다”며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빈부격차와 교육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피라미드’ 위에 있었던 아이들은 조금만 노력해도 모든 것이 가능한데 밑에 있었던 아이들은 ‘죽어라’ 해도 안 되는 세상이 온 거죠. 그건 좀 불공평하잖아요. 아이들이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나중에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게 될 나이가 오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적어도 나쁜 선택은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점프’의 목표에요.”
이 대표는 더 나아가 아이들이 ‘돈’보다는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높은 자리에 가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양한 가치관을 키웠으면 한다”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성공하고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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