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 게 비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는 싶죠. 그런데 고용이나 소득 같은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면 아이를 낳으라는 외침이 공허하게 들려요.”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사상 처음 25만명 밑으로 떨어지는 등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심화한다는 우려가 높지만, 출산 적령기의 젊은 층 사이에서는 현실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여론이 팽배하다.
23일 통계청의 ‘2022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26만6000명)보다 4.4%(1만1500명) 줄어든 24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2012년 48만명을 넘던 출생아 수는 2015년 이후 계속 줄었고, 처음으로 25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다.
정부는 저출산 현상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여전히 젊은 세대들은 출산을 주저하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방모(30)씨는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든다. 아이가 크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고, 더 질 좋은 교육을 해주고 싶을 텐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해주기 힘들 것 같다”며 “내 노후도 스스로 대비해야 하는 만큼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스태프로 일하는 윤모(30)씨도 “집값, 사교육비 등 아이로 인해 들어갈 지출을 고려하면 지금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다”며 “빠듯하게 살면서 아이가 커가는 것만을 보면서 행복해 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성들의 경력 단절 우려가 여전한 점도 출산을 꺼리는 원인 중 하나다.
윤씨는 “회사에 1년 간 육아 휴직을 다녀온 선배가 있는데 그 공백기 극복이 힘들어 보였다”며 “육아 휴직을 다녀오면 회사 내에서 경쟁력을 잃고 입지가 줄어드는 경우를 보니 꺼리는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2년 차 직장인인 조모(27)씨도 “업무 강도가 높고 근무 시간에 대중이 없어서 아이 양육과 일을 병행할 수 없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 직장을 얻었는데 일을 그만 두면서까지 출산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경력 단절 우려가 적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출산은 비합리적인 선택이란 분위기가 적지 않다.
김모(31)씨는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결혼이나 아이 양육을 하려는 또래 남자들이 많다”며 “부족한 근로소득, 비싼 집값,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결혼이나 양육의 허들이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비용들을 여행이나 자기 계발, 투자에 쓴다면 삶의 질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 낳기가 꺼려진다”고 전했다.
올해 결혼 2년 차인 임모(30)씨는 “과거에는 아이가 크면 (노년에는) 나를 부양해준다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내가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가 커서 나를 부양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한다”며 “아이 양육이 부담으로만 다가오다 보니 아이 낳기를 꺼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 출산을 경험한 이들 사이에서도 둘째는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에서 만 3세 아이를 키우는 임모(39)씨도 “첫 아이 돌봄을 전담하면서 다시 일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등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며 “둘째 출산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주거비와 아이 교육비 등으로 이미 빚이 많은 것도 부담”이라고 했다.
이모(36)씨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보니 정신도 몸도 지치는게 사실”이라며 “둘째를 갖고 싶다가도 필요한 지출과 돌봄 부담을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첫째아가 출생아 수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7%로 전년보다 5.9%p 증가한 데 반해, 둘째아는 7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16.8%(1만5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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