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과실이 있다면 먼저 고소하는 걸 추천합니다. 학교폭력 사건에선 선제적으로 법적 절차를 밟으면 피해자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A 변호사)
27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학교폭력 변호 전담’ 변호사에게 “가해 학생으로 신고됐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묻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 변호사는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으니 피해 학생이나 그 부모에게는 따로 연락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직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57)가 검사 시절 학교폭력을 저지른 아들의 강제 전학 조치를 막기 위해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을 낸 것을 두고 교육 현장에선 “드문 일이 아니다”라는 분위기다. 최근 ‘학교폭력 전담팀’을 꾸린 로펌 등이 교육청 징계 조치에 대해 집행정지 신청이나 불복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두고 “법률적 조언을 듣는 건 당연한 권리”란 의견도 나온다.
● “시간 끌면 기록 안 남아” 꼼수 조언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했을 때 가해 학생 측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로펌이나 변호사를 동원해 일단 처분을 늦추는 게 관례처럼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문의한 한 변호사는 “유능한 변호사라면 소송을 1년 정도 끌어 (학교폭력 관련 처분이) 입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만든다”며 “그렇지 않으면 학교폭력 조치 처분 중 4호(사회봉사) 미만은 졸업과 동시에 생활기록부에서 삭제되기 때문에 3호(학교봉사) 이하 처분이 나올 수 있도록 법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도 “지난해 3월 초등학교 5학년 학부모로부터 의뢰를 받고 학교폭력 처분에 집행정지를 신청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걸 막았다”며 “기록에 남기지 않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제는 징계 처분이 지연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지 않고, 2차 가해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학교폭력 피해를 본 뒤 행정소송까지 당했던 박모 씨(22)는 “소송이 진행되면서 가해자와 계속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정신적 괴로움이 컸다”고 했다. 정 변호사의 경우에도 아들 전학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 등을 진행하면서 계속 한 공간에 있는 걸 못 견딘 피해 학생이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이 판결문에 적시돼 있다.
● 학폭 전문 변호사 4배로 늘어
학교폭력이 법정으로 가는 사례가 늘면서 서울행정법원은 이달 학교폭력 사건 전담 재판부를 신설했다. 또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전문 분야로 등록한 변호사는 현재 17명으로 2019년 4명에서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를 두고 교사들 사이에선 “법정 다툼이 일상화될 경우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가 힘들어지고 가해 학생의 반성과 피해 학생의 회복에도 지장이 생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법적 조언을 받을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률사무소 사월의 노윤호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간혹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학생도 분명히 있다. 이들을 돕는 것도 변호사의 역할”이라며 “법적 조력을 통해 가해 학생에게 잘못한 부분을 알려주고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했다. 법무법인 오현 나현경 변호사는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가 가해 학생만 돕는 건 아니다. 너무 낮은 징계 처분이 나왔을 때 피해 학생을 대리해 불복 소송을 제기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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