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구인대란]
수술-외래진료 않고 입원환자 돌봐
전공의 대신 채용땐 고임금 부담
“중증도 따라 수가 다르게 책정해야”
지난해 12월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입원병동 운영을 중단한 이유는 입원 환자들을 돌볼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1명밖에 없어서다. 의료계에서는 대안으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입원전담전문의는 수술이나 외래 진료를 하지 않고 병동에서 입원 환자를 돌보는 일만 전담하는 의사다. 보통 국내병원은 입원 환자 관리를 전공의들이 전담해왔는데, 올해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공의 충원율이 25.5%에 그치는 등 필수의료 전공의 부족이 심해지고 있다. 의료계에선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만으로도 필수의료 의사 부족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제도를 통해 요양병원에 취업한 소청과 전문의, 성형외과 의원을 차린 외과 전문의 등 ‘전공이 아닌’ 일을 하고 있는 전문의들을 다시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요 필수의료 과목(외과·소청과·산부인과·흉부외과) 전문의 중 38.7%는 본인 전공과목 진료를 하지 않고 있다. 은퇴자를 포함한 수치임을 감안해도 필수의료 전문의 상당수가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병동에 입원전담전문의가 있으면 입원 환자들도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전공의는 의대 졸업 후 병원에서 일하며 전문성을 기르고 일을 익히는 ‘학생 의사’인 반면, 전문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장성인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팀이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입원전담전문의가 있는 병동에서 환자의 만족도가 3.3∼7.9배 높아졌다. 외과 입원전담전문의로 일하는 정윤빈 세브란스병원 진료교수는 “전공의는 수술실 보조 등 다른 업무를 많이 맡고 있어 입원 환자 케어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이 처음 시작된 건 2017년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활동 중인 입원전담전문의는 346명에 불과하다. 미국은 6만 명 안팎에 이른다. 이처럼 제도 정착이 더딘 건 ‘돈’ 때문이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입원전담전문의를 뽑고는 싶지만, 1명을 채용할 때마다 6000만 원에서 7000만 원씩 적자가 난다”고 말했다.
입원전담전문의들의 연봉은 통상 1억5000만 원 안팎인데, 병원 입장에서 이 정도 수익을 내려면 입원전담전문의 1명이 환자 25명을 돌봐야 한다. 하지만 중증 환자가 많은 상급종합병원에선 의사 한 명이 이만큼 많은 환자를 돌보기는 힘든 실정이다. 장 교수는 “중한 환자의 경우 15명 정도만 돌봐도 병원 입장에서 ‘수지’가 맞도록 중증도에 따라 수가(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를 다르게 책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필수의료 전문의들이 전공을 살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원전담전문의
수술이나 외래 진료를 하지 않고 병동에 상주하며 입원 환자를 돌보는 일만 전담하는 전문의. ‘호스피털리스트(hospitalist)’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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