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멧돼지 출몰 30%가 화지산
공동주택단지와 가까워 주민 위협
엽사들 인명피해 우려로 활동 제약
“멧돼지 야간 포획 활동에 중요한 것은 엽견(獵犬)이 산 아래로 가지 않게 하는 겁니다.”
지난달 27일 밤 부산 부산진구 화지산 중턱.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의 최민석 엽사(42)가 정상부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이같이 말했다. 최 엽사를 앞서가며 산 아래 방향을 수색하던 두 마리의 플롯 하운드 엽견도 다시 최 엽사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엽견이 멧돼지를 쫓아 붙잡은 지점이 주택가와 인접한 산 아래라면 엽총을 쏠 수가 없다”며 “발사된 엽탄이 엉뚱한 곳에 튕기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엽견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주택가 골목으로 뛰쳐나가다가 차량과 부딪치는 사고도 걱정해야 한다.
이날 투입된 엽견 두 마리는 분주하게 서로 다른 임무를 수행했다. A 엽견은 ‘수색조’. 뛰어난 후각과 빠른 다리로 멧돼지의 흔적을 찾는 데 정신이 없었다. 강한 체력의 B 엽견은 ‘대기조’였다. A가 타깃을 발견하면 곧바로 달려가 멧돼지의 목덜미를 물어 제압한다고 했다. 엽견의 목에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가 달려 실시간 위치가 최 엽사의 GPS 수신기에 표시됐다. 최 엽사는 “엽견들이 한곳에서 오래 머물거나 크게 짖으면 멧돼지를 발견해 대치 중인 상황으로 보면 된다”며 “10m 안팎의 거리에서 멧돼지에게 엽총을 쏜다”고 했다. 최 엽사는 이런 방법으로 최근 1년간 부산 도심 산에서 멧돼지 50여 마리를 포획했다.
하지만 최 엽사와 동행한 이날 멧돼지 포획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는 없었다. 최 엽사는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주택가 텃밭 등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야간에 산 아래쪽 수색은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멧돼지 포획에 동행한 것은 부산 중심부에 자리한 화지산에 멧돼지 출몰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완전 포획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엽사들은 섣부른 포획 시도로 발생할 수 있는 인명 피해 등을 걱정하고 있었다.
7일 동아일보가 확보한 부산경찰청의 ‘멧돼지 출몰 관련 112 신고 접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부산에서 총 64건의 멧돼지 출현에 따른 포획 조치 요청 신고가 접수됐다. 화지산 일대(부산진구 초읍·연지·양정동, 연제구 거제동)의 신고가 17건으로 전체의 약 27%를 차지했다. 최근 3개월간 부산 멧돼지 출현 신고의 10건 중 3건이 화지산에서 접수된 셈이다.
화지산은 해발 199m의 비교적 작은 산이다. 산 아래는 수십만 가구가 사는 부산진구와 동래구 연제구의 공동주택 단지다. 우연히 화지산에 유입된 멧돼지가 도심 외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머물고 있다는 것이 엽사들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신고가 주택가에서 접수됐다. “초읍동 ○○빌라 인근의 경로당 근처에 멧돼지 3마리가 있다.”(지난해 12월 15일) “연지동 ○○아파트 1차 104동 근처에 4마리가 돌아다닌다.”(지난해 12월 18일 오후 5시 50분) “개와 산책 중 초읍동 ○○골프장 위 샛길에서 멧돼지 여러 마리를 만났다. 개와 마주 보며 대치 중이다.”(2월 2일 오후 7시 35분)
신고 건수는 많지만 화지산에 서식하는 멧돼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엽사들은 분석하고 있다. 소수의 멧돼지가 먹이를 찾으려고 주택가에 반복 출몰했다가 주민 눈에 띄는 상황이 되풀이된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진구는 지난해 봄 성돈과 새끼 등 7마리 안팎이 이곳에 유입됐다가 지난달 새끼 3마리가 붙잡히면서 현재 2, 3마리가 화지산에 남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은 멧돼지 중 암컷이 지난해 말 임신을 했다면 4월경 여러 마리의 새끼가 태어나 화지산의 멧돼지 수가 더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멧돼지는 12월과 1월 교미를 하고 임신 기간은 110일 안팎이다.
최 엽사는 “밤에는 엽총을 사용할 수 없지만, 낮에는 엽견을 산에 풀어 수색할 수가 없다”며 “산책객들이 목줄 없이 곳곳을 누비는 엽견을 멧돼지만큼이나 위협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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