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지인한테서 이런 연락과 함께 사진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로수 보호판에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Hi Seoul Soul of Asia’
이명박 시장 재임 시절인 2002년 서울시가 처음 만든 슬로건 ‘하이 서울(Hi Seoul)’. 그리고 오세훈 시장 1기 시절인 2006년 도입된 서브 슬로건 ‘소울 오브 아시아(Soul of Asia)’.
이 슬로건들은 2015년 박원순 전 시장 당시 ‘아이 서울 유(I SEOUL U)’로 교체됐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이달 16일까지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을 결정하기 위한 결선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슬로건 후보군은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과 ‘서울 포 유(Seoul for you)’입니다.
이에 따라 서울시 슬로건은 처음 도입된 지 21년 만에 3차례나 바뀌게 됐습니다. 미국 뉴욕주가 1977년 ‘아이 러브 뉴욕(I♥NY)’ 슬로건을 46년째 사용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서울시 슬로건들은 어쩌다 이런 얄궂은 운명을 맞이하게 됐을까요.
● 13년 만에 막 내린 ‘하이 서울’
서울시 슬로건의 역사는 2002년 이명박 전 시장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 전 시장은 ‘하이’라는 인사말을 붙여 친근한 서울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겠다며 ‘하이 서울’을 시 브랜드로 선정했습니다. 이를 두고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찌 됐든 ‘하이 서울’은 2015년까지 13년간 공식적인 서울시의 도시 인지도로 자리매김합니다. 이 전 시장과 같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전신) 소속으로 2006년 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하이 서울’ 밑에 ‘소울 오브 아시아‘라는 문구를 추가 하는 선에서 브랜드를 유지합니다.
이후 오 시장이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논란으로 중도 퇴임하며 ‘하이 서울’의 시대도 함께 막을 내립니다. 이어 2012년 당선된 박원순 전 시장은 미래형 브랜드가 필요하다며 시민 공모를 통해 ‘아이 서울 유’로 슬로건을 교체했습니다.
● 나는 너를 서울한다?
서울시의 슬로건을 도입하거나 바꿀 때마다 비판은 있었지만 ‘아이 서울 유’를 향한 비판은 유난히 컸습니다. 일단 전임 시장 흔적 지우기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 ‘아이 서울 유’를 직역하면 ‘나는 너를 서울한다’는 뜻이 돼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와 닿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죠. 네덜란드에 있는 ‘아이엠스테르담(I am sterdam)을 따라 한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받았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들은 슬로건에 익숙해지는 듯 보였습니다.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조형물을 설치하며 일상 속에서 도시 브랜드를 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울시가 2020년 아시아리서치앤컨설팅에 의뢰해 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아이서울유’의 인지도는 88%, 호감도는 75%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6년 브랜드 호감도가 52.8%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아진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 서울 유’의 시대도 10년을 넘지 못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2021년 5월 오 시장이 보궐선거로 서울시로 돌아온 직후부터 입지가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했고,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아이 서울 유’를 폐기하고 새로운 도시 브랜드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7년 만에 또 슬로건 교체
서울시는 ‘아이 서울 유’를 대체할 새 브랜드 후보로 ‘서울, 마이 소울’과 ‘서울 포유’ 두 가지로 압축하고 16일까지 온라인 결선 투표를 실시해 결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친구들이랑 한강 공원에 있는 ‘아이 서울 유’ 조형물 앞에서 사진 찍고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갑자기 슬로건도 바꾸고 조형물도 철거한다고 하니 ‘굳이?’ 싶기도 하고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도시 슬로건이 일관성도 없이 시장 바뀔 때마다 바뀌니 기억에 남을지도 의문입니다.” (이모 씨(27·영등포구))
“도시 슬로건은 시정 운영에 대한 포부라고 생각하는 만큼 업데이트 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아이 서울 유’는 문법적으로도 이상하잖아요. 차라리 ‘아이러브뉴욕’처럼 직관적인 슬로건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장모 씨(28·용산구))
서울시는 결선 투표가 마무리되는 대로 최종 후보 선정 작업에 들어갑니다. 투표 결과와 도시 브랜드 가치와 의미, 슬로건 디자인 등을 고려해 새로운 도시 브랜드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하는데요. 현재까지 새 브랜드 제작을 위해 투입된 예산은 약 3억 원 정도. ‘아이 서울 유’를 사용한 시설물을 철거하거나 새로운 슬로건 조형물을 만드는 추가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순수 개발’ 비용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새로운 조형물에 대한 예산 계획은 아직 수립이 되지 않은 상태”라며 “기존에는 유동 인구를 고려하지 않고 29곳에 무분별하게 설치돼 있었지만 새로운 도시 브랜드 조형물은 꼭 필요한 곳에만 설치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가로수 보호판, 하수구 등은 노후화 돼 교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바꿀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교차로, 시내버스 전광판 등에 디지털로 송출되는 로고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부분들부터 교체를 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부디 이번 도시 브랜드는 ‘아이러브 뉴욕’처럼 오래 살아남기를. 그래서 누군가의 추억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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