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늘리는 내용의 정부 근로시간 개편안이 발표된 6일 직장인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달아 올라왔다. 포괄임금제를 시행하는 기업에서 정부 발표 개선안이 동시에 시행될 경우 근로시간 유연화라는 취지가 ‘공짜 근로 장기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포괄임금제는 ‘포괄 임금계약’과 ‘고정OT(Over Time·초과근무) 계약’을 합친 말이다. 쉽게 말하면 법으로 정한 기본 근로 이외에 더 일하는 연장, 야간, 휴일 근로에 상응하는 추가 수당을 실제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일정한 금액으로 고정해서 주거나, 그 금액을 기본 임금에 포함시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법에 정해진 임금 지급 방식이 아니라 판례와 관행을 통해 굳어진 것으로,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운 특수 업종에서 활용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 게임 개발자, 야간 경비직, 생산 근로자 등이 포괄임금을 적용받고 있는 대표적 직군이다.
포괄임금제는 일부 사용자(고용주)에 의해 악용돼 ‘공짜 야근’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근로 계약에서 근로자와 사용자가 약정한 시간을 넘겨 더 오래 일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 예를 들어 연장근로 단위가 늘어나 주 최대 69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게 되면 연장근로는 늘어나는데 수당은 고정돼 공짜 근로, 야근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대기업 직장인 A 씨는 “회사에 주 52시간짜리 ‘근로자 자유이용권’을 주 69시간짜리로 바꿔 주는 것 아니냐”고 올렸고 많은 이들이 여기에 공감을 표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일부터 운영한 온라인 포괄임금 신고센터에는 “연장근로 시간을 한 달 33시간으로 정해놓고 그 이상 일해도 (통상임금의) 1.5배인 연장근로 수당도 안 준다. 매일 1시간은 ‘무료 노동’ 하는 셈” 등의 사례가 접수됐다.
정부도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부는 이달 포괄임금과 관련한 ‘편법적 임금지급 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올 상반기(1∼6월)에 고용부 역사상 처음으로 포괄임금 오남용 사례를 적발하는 기획근로감독도 실시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6일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하며 “포괄임금 오남용을 근절해야 기업이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비용으로 인식하게 된다”며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이 가장 확실한 근로시간 단축 기제”라고 밝혔다.
노동계에서는 “(포괄임금 오남용) 감독 정도로는 역부족”이라며 보다 강화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장시간 노동과 공짜 노동을 야기하는 포괄임금제에 대한 대책은 ‘포괄임금 금지’를 법제화하지 않는 이상 과거 정책의 재탕에 불과한 실효성 없는 규제”라고 밝혔다.
정부의 노동개혁을 위한 전문가 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을 맡았던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포괄임금제는 법적 개념이 아니라서 법률로 금지하기 어렵다”며 “임금대장에 소정·연장 근로시간 등 근로시간을 종류별로 엄정하게 산정하고 기록하면 포괄임금 오남용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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