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로 버티는 ‘도시 엽사’[디지털 동서남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9일 17시 22분


동아일보 사회부에는 20여 명의 전국팀 기자들이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전국팀 전용칼럼 <동서남북>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깊이있는 시각을 전달해온 대표 컨텐츠 입니다. 이제 좁은 지면을 벗어나 더 자주, 자유롭게 생생한 지역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 동서남북>으로 확장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 등 뉴스의 이면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엽사(獵師)를 실제로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주로 산이 많은 비도심 지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구 330만 명이 사는 부산에 등록된 엽사는 17명 뿐이다.

하지만 대도시 번화가에서도 멧돼지 출몰 사례가 심심치않게 발생하고 있다. 실제 포획 개체 수도 늘고 있다. 2020년 263마리였던 부산의 멧돼지 포획 수는 2021년 423마리, 지난해 563마리로 증가했다. 언제 어디서든 엽사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최민석 엽사(42)가 지난달 27일 밤 엽견들과 함께 멧돼지를 포획하기 위해 부산 화지산 중턱을 수색하고 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최민석 엽사(42)가 지난달 27일 밤 엽견들과 함께 멧돼지를 포획하기 위해 부산 화지산 중턱을 수색하고 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엽사의 필요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엽사를 하려는 사람은 적은 실정이다. 힘든 노동환경과 열악한 보수 탓일 것이다. 지난달 27일 밤 부산 화지산과 백양산 일대의 멧돼지 포획에 나선 최민석 엽사(42)를 4시간 동안 따라다녀보니, 그동안 몰랐던 엽사의 어려움을 접할 수 있었다.

김화영 기자
김화영 기자
농·산촌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도심지는 포획 보상금이 적다. 사기를 떨어트리는 요인이라고 했다. 산이 깊은 농·산촌은 하루 출동에도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지만, 해발이 낮은 도심 산은 나흘 밤을 수색해야 겨우 1마리를 포획한다고 했다. 1마리 포획 때 최 엽사가 받는 포상금은 30만 원. 환경부 보상금 20만 원과 부산시 부상금 10만 원이 더해진 금액이다. 농·산촌은 지자체 자체 포상금만 30만 원을 넘기는 곳이 많다.

최 엽사는 “1발에 약 4000원인 엽탄을 2발 넘게 쏴야 큰 타깃을 제압할 수 있다”며 “상당수 지자체가 엽탄과 엽총 구입비를 지원하지만, 부산시에는 이런 정책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연간 20만 원이 드는 ‘수렵보험’ 가입을 지원하는 지자체도 다수지만, 부산에선 엽사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포획 활동 중에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을 모두 엽사가 져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 엽사가 부산지역을 닷새 동안 누벼 멧돼지 1마리를 잡아 보상금 30만 원을 받아도 엽견 수송 교통비와 보험비 등을 제하면 쥘 수 있는 포상금이 얼마 되지 않는다.

엽사의 명맥이 끊길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최 씨가 속한 팀은 7명이 해운대구와 동래구 등 부산 내 14개 기초지자체의 멧돼지 포획을 책임지는데, 6명이 60대 중반 이상이다. 최 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앗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도심 자택에서 소음 민원 때문에 대형 사냥견을 키울 수 없어 15㎞ 이상 떨어진 기장군에 별도 견사를 마련해야 하는 점도 고민거리다. 출동 때마다 엽견을 태워 현장으로 향하면 이미 늦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급한 포획 요청 신고가 접수돼도 현장 도착에 2시간 넘는 시간이 걸리기 일쑤다. 늦은 출동은 포획 가능성을 떨어트린다.

도시 인근 산에선 엽견 없이 포획에 나설 수도 없다. 엽견의 도움 없이 눈으로 타깃을 판별했다가는 야간산행에 나선 사람을 오인 사격할 위험이 크다.

최민석 엽사(42)가 지난달 27일 밤 엽견들과 함께 멧돼지를 포획하기 위해 부산 화지산 중턱을 수색하던 중 대나무숲을 바라보고 있다. 최 엽사는 “이곳에 멧돼지가 몸을 숨기면 포획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최민석 엽사(42)가 지난달 27일 밤 엽견들과 함께 멧돼지를 포획하기 위해 부산 화지산 중턱을 수색하던 중 대나무숲을 바라보고 있다. 최 엽사는 “이곳에 멧돼지가 몸을 숨기면 포획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도시 엽견이 부족할수록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주민들은 먹이를 찾아 주택가에 나타나는 멧돼지 탓에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양돈농장에 옮겨 돼지를 폐사시키면 돈육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다.

엽사들을 지원할 대대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먼저 엽사들이 신고를 받고 빠른 시간에 출동할 수 있도록 도심 산의 유휴 부지에다 견사부터 지어주면 어떨까. 멧돼지 출몰이 끊이지 않는 화지산이나 백양산의 시민 발길이 뜸한 곳을 검토할만하다. 부산시는 포획 포상금 현실화도 논의해야 한다. 멧돼지 출몰에 따른 시민의 안전문제를 엽사들의 ‘열정페이’에만 맡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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