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경제 활동 의미하는 ‘경상’
수입-지출 총합인 ‘수지’를 더한 말
거래로 발생한 이익이나 손실을 의미
국제 교역 집계 땐 ‘무역수지’로 표현
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할 때 한자 사전을 옆에 끼고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려운 용어 중에 하나가 ‘경상’입니다. ‘경상’이라는 한자는 국제 경제, 무역, 소득의 종류 등에서 등장합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경상수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 경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말, 수지
경상은 한자로 쓰면 ‘經常’이고 영어로는 ‘current’입니다. 경(經)은 한자 그 자체의 의미라기보다는 경제(經濟)를 지칭하고, 상(常)은 한자 그 자체의 의미, 즉 ‘항상 또는 늘, 일상적인 또는 통상적인’을 의미합니다. ‘경상’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상적인 경제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지는 한자로 ‘收支’입니다. 수입과 지출, 수취와 지급을 뜻하는 한자어의 앞 글자를 하나씩 모아 만든 용어입니다.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라고 할 때의 그 수지입니다. 영어로는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balance(밸런스)’입니다. ‘수지’는 얼마나 벌었고, 얼마나 썼는지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두 부분의 숫자를 단순 합산해서 구합니다. 들어온 것(수입, 수취)은 플러스, 나간 것(지출, 지급)은 마이너스. 예를 들어 내가 이달에 100만 원을 벌고 110만 원을 썼다면 수지는 ―10만 원입니다. 다음 달에 200만 원을 벌고 210만 원을 썼다면 수지는 ―10만 원입니다. 수입과 지출이 모두 2배 정도로 늘었는데 수지는 둘 다 ―10만 원입니다.
여기서 질문. 내 주머니에는 지금 돈이 모이고 있을까요? 답은 ‘아니요’겠죠. 그것을 어떤 숫자가 가장 잘 보여줄까요? 100, 110, 200, 210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10이라는 숫자가 간단하게 알려줍니다. 만약 그 다음 달에 얼마 벌고 얼마 쓰는지를 모두 보지 못해도 수지 하나를 보면 지금 돈이 모이는지 새나가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수지에서 플러스 숫자는 ‘흑자’, 마이너스 숫자는 ‘적자’라고 부릅니다. 예전에 장부를 손으로 쓸 때 검은 잉크(검은 글씨·흑자), 빨간 잉크(빨간 글씨·적자)로 구별해 쓰던 관행에서 유래했습니다. 적자가 계속 이어진다면 지금 돈이 모이지 않고 새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 ‘경상 수지가 흑자’=돈이 모였다
경상수지와 관련한 최근 뉴스 기사를 공부해 봅시다.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98억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1년 전(852억3000만 달러)과 비교하면 흑자 폭이 554억 달러 줄었다. 경상수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는 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이 절반 가까이 급감하면서 무역수지는 1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읽고 바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씩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모든 경제적인 것에는 대가가 있고, 대가로서 돈이 오고갔다면 그럴 만한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제 활동에서는 물건을 사고팔고, 일을 하고 일당을 받듯이 실질적인 이유로 주고받는 돈의 주인이 바뀝니다.(빌려주거나 투자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거래를 ‘경상거래’라고 합니다.
경상거래에는 상품을 사고파는 거래, 여행상품 같은 무형의 서비스를 사고파는 거래, 월급이나 이자, 배당과 같이 생산 요소를 제공하고 받는 소득 거래, 재난 구호금이나 원조같이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이전 거래가 있습니다. 경상수지를 계산할 때 이 네 가지를 각각 상품수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이전소득수지로 구분하여 합산합니다. 경상수지가 흑자라면 경상거래에서 해외로 나간 돈보다 국내로 들어온 돈이 많았고 우리나라의 주머니에 돈이 모였다는 의미가 됩니다. 반대로 경상수지가 적자라면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많았고 우리나라의 주머니에서 돈이 새나갔다는 의미가 됩니다.
개인의 경상수지가 흑자라면 늘어난 돈이 어디엔가 모여야 하고, 경상수지가 적자라면 부족한 돈이 어디로부터 나와서 메워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어디’는 적금 통장에 저축해 둔 돈일 수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빌린 돈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달에 월급이 200만 원인데, 210만 원을 소비 지출에 썼다면 경상거래에서 ―10만 원의 적자가 발생합니다. 마이너스에 해당하는 10만 원은 작년에 모아둔 적금 통장에 있던 돈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구가의 주머니에 있던 돈일 수도 있습니다.
적금 통장에서 인출한 돈이든, 빌린 돈이든 그 10만 원은 이달 소비 지출을 위해 현재의 내 지갑으로 들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자본으로만 보면 ‘수지’는 +10만 원 흑자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예전에 모아둔 돈에서 빼낸 돈이고, 빌린 돈이면 반드시 갚아야 할 남의 돈이 들어온 것이니 진정한 흑자, 즉 내가 번 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경상수지 흑자와는 구분하여 계산합니다.
국가 수준에서 이것을 기록하는 항목이 자본수지와 금융계정입니다. 합쳐서 ‘자본·금융 계정’ 또는 ‘자본수지’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자본수지 흑자는 실질적으로는 자기 자산 감소 또는 부채의 증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국가 수준에서 개인의 적금 통장에 해당한 돈을 ‘준비 자산’ 또는 ‘외환 보유액’이라 하고 경상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 시장 안정을 위해 활용되며 한국은행과 정부가 관리합니다.
● 국경 넘나드는 돈은 ‘무역 수지’로 집계
마지막으로 무역수지입니다. 국제 수지는 국경을 넘나드는 돈의 흐름을 집계한 일종의 통계입니다. 그러다 보니 집계하는 방식과 작성 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무역수지와 상품수지는 상품의 수출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상품수지는 한국은행이 작성하는데 물건 가격 위주로 계산하는 반면에 무역수지는 관세청이 작성하는데 물건 가격 외에 운송비, 보험료 등 부대비용을 포함합니다. 관세청은 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물건의 흐름을 관리해야 하니 물건에 붙어있는 부대비용까지 포함한 거래총액을 집계하지만(만약 분리한다면 관세부과의 대상이 혼란스러워 경우에 따라 운송비나 보험료를 부풀려 관세 금액을 줄이려는 꼼수를 부릴 수도 있겠죠), 한국은행은 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돈의 흐름을 관리해야 하니 돈의 성격을 분리해서 집계합니다. 수입되는 상품의 가격이 1만 원이고 운송비가 3000원이면, 관세청은 수입가액을 1만3000원으로 잡는 반면, 한국은행은 물건 가격 1만 원은 상품수지 항목에, 운송비 3000원은 서비스수지 항목에 나누어 집계합니다.(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상품수지 작성에서 금액이 누락되는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 겁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무역수지에서 수입비용이 약간 크게 계산되니 처음 언급한 기사 내용처럼 상품수지 적자 기간보다 무역수지 적자 기간이 길게 나타날 수 있었던 겁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