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된 도슨트(docent)는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을 말한다. 도슨트는 전시 작품, 작가의 생애, 미술관의 전시 기획 의도 등을 설명하며 전시와 관람객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같은 전시회를 찾아도 어떤 도슨트를 만나느냐에 따라 관람객의 이해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미술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슨트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일부 도슨트의 경우 팬덤이 형성될 정도다. 이 때문에 관객을 유치하려는 전시 기획사들 사이에선 ‘스타 도슨트’ 섭외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스타 도슨트’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왜 관객들은 그들을 찾는지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기쯤 오면 다리가 아프실 거예요. 한국은 아직 관람 문화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요. 미술관 바닥에 앉아서 편하게 보셔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2일 ‘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평일 오전인데도 5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한 남성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캐주얼 정장을 갖춰 입은 남성은 마이크를 차고 투어를 진행하듯 전시를 설명했다. 관람객을 몰고 다녀 ‘미술관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불리는 그는 6년 차 도슨트 정우철 씨(34)이다.
설명을 듣던 관객들은 전시 관람 경험이 많지 않은 듯 일반적인 내용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 도슨트도 이런 관객들을 배려해 작품에 관한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작가의 삶이나 사변적 이야기로 설명을 이어갔다. 전시장을 찾은 문성숙 씨(72)는 “여고 동창 10여 명이 종종 모여 가볍게 전시를 관람하고 차를 마시곤 한다. 오늘도 일부러 도슨트 시간에 맞춰 왔다”고 했다.
설명이 끝난 뒤 일부 관객이 정 도슨트를 찾아 인사를 건네거나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정 도슨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의 일정을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팬 카페도 생겼다.》
● 객관성 강조 김찬용, 감성 설명 정우철
정 도슨트의 설명은 단정적이고 웅변적이었다. 작품에 관해 “멀리서 보면 구상, 가까이서 보면 추상”이라거나 “노란색 배경은 경쾌한 음악을, 붉은 배경은 열정적인 음악을 뜻하는 것”이라는 식의 간결하면서도 알기 쉬운 언어를 사용했다. 또 “작품을 하나하나 분석할 필요는 없다”며 전시장의 큰 주제와 그것이 작가의 인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주로 설명했다.
또 중간중간 그는 ‘재밌는 게 뭐냐면’, ‘맞는 말인 게 뭐냐면’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작품의 보존 상태에 관한 뒷이야기나 액자에 끼워진 유리가 있고 없을 때의 차이 등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도 했다. 정 도슨트는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최대한 친구처럼 설명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제가 과거 어느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을 때 ‘너네는 이것도 모르지? 내가 배웠으니 알려줄게’라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어떨 땐 기분이 나빠져 바로 나간 적도 있었죠. 미술 용어도 어려운데, 설명도 권위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정 도슨트가 감성에 충실한 설명을 한다면, 또 다른 ‘스타 도슨트’ 김찬용 씨(39)는 좀 더 분석적이다. ‘국내 1호 전업 도슨트’로 16년 경력을 지닌 그는 작품보다 자신이 돋보여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가 도슨트로 전시장에 설 때 검은 옷만 입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전시 기획자, 작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철저한 중간자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도 알아듣기 쉬운 언어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한다고 했다.
“평소 유튜브나 밈(meme)을 즐겨 봐요. 예를 들어 현재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마르틴 마르지엘라 전시는 작가의 독창성이 핵심 키워드예요. 독창성을 잃어가는 시대의 모습을 설명할 때 ‘무신사 냄새 쩐다’(인기 쇼핑몰의 흔한 옷을 구매해 개성이 없다는 의미)는 유행어로 말하면 20, 30대 관객은 쉽게 받아들여요. 뒤이어 그런 상황 속에서 ‘마르지엘라가 해체주의 디자인을 통해 독창성을 보여줬다’고 설명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죠.”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이자 예술가인 마르지엘라의 작품은 ‘독특하면서도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이 놓여 있던 ‘흔적’만 전시하거나 작품 옆엔 제목 한 줄만 있을 뿐, 별도의 설명조차 없는 식이다. 어려운 전시인데도 김 도슨트의 설명이 인기를 끌면서 관심을 모았다.
● 자원 봉사자에서 전업 도슨트로
두 스타 도슨트가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던 건 아니다. 과거 도슨트는 급여를 받지 않고 자원봉사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두 사람 역시 무급으로 일을 시작했다.
김 도슨트는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졸업하고 작가로 살아남기 험난한 현실 속에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도슨트가 됐다. 처음 그가 도슨트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도슨트는 잠깐 경험해보는 봉사일인데 어떻게 전업으로 하냐”며 만류했다.
“현장에서 전시 스태프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미술은 약간의 정보가 있으면 감상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이 일을 누군가가 책임감 있게 하면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처음 10년간은 수입이 적었다. 그는 연말마다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슨트의 위상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 계기로 2013∼2015년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이 연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 ‘청춘, 그 찬란한 기록’,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과 그즈음 시작된 소셜미디어의 인기를 꼽았다.
“두 전시는 이례적으로 전시장 내부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했어요. 이게 당시 막 확산된 소셜미디어 문화와 엮여서 미술 전시를 즐기는 연령층이 넓어지기 시작했죠. 그 전에는 방학 때 어린이 관객이 보는 유물 전시가 대부분이었고 현대미술 전시는 텅 빈 미술관에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보는 풍경이 익숙했어요.”
소셜미디어 확산을 기점으로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 유입되면서 오디오 가이드 등 관객 서비스가 확장됐다. 도슨트 설명도 그중 하나였다. 미술 용어를 관객에게 맞춰 쉽고 재밌게 풀어낸 설명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김 도슨트는 2017년 알베르토 자코메티전 등을 통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정 도슨트는 2019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르나르 뷔페’전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이전까지는 도슨트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부족해 대리운전 등 투잡을 고민했을 정도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뷔페전 국내 개최를 알게 됐고, 이 전시에 모든 것을 다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간 모은 돈을 몽땅 털어 베르나르 뷔페 미술관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작가의 비극적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전시 초반엔 10명 남짓한 분들이 들었지만, 해설 시간마다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친구를 데려오거나 입소문을 내면서 전시 막바지에는 한 관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모였죠.”
당시 그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긴장돼 진정제를 먹기도 했다. 뷔페전을 계기로 유명해진 그는 이후 강연과 방송 출연, 저서 출간까지 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 스타 도슨트는 일부, 대부분 무급 봉사
일부 상업 전시 기획사의 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슨트는 여전히 무급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다. 또 ‘스타 도슨트’라고 해서 최근 미디어에 보도된 것처럼 도슨트 업무만으로 큰 수입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상업 전시 도슨트들은 평균 10만∼15만 원의 일당을 받는다. 다만 이를 기반으로 외부 강연, 개별 투어나 해외 미술관 투어 등을 통해 부수입을 얻는다. 김 도슨트는 “처음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전시에서 근무 제안을 해오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수익에 수년간 큰 변화가 없다가 방송이나 강연, 출간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공립 미술관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부하고, 배운 것을 나누는 커뮤니티 활성화 차원에서 도슨트 활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활동에 필요한 실비나 교통비 정도를 지원받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03년부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교육 수료자 중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미술관 도슨트로 선발되며 성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가장 최근 모집을 실시한 2019년에는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한 70명 중 13명이 미술관 도슨트로 선발됐다. 2021년에는 도슨트를 주제로 한 전시 ‘SeMA 도슨트 대회1…묵다 묻다’도 열렸다.
● 주입식 설명은 우려, 전문화 필요성도
도슨트 설명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자신의 관점을 찾아가는 것이 전시 감상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설명은 결국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본 해석이기에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스타 도슨트’는 작품을 보고 각자의 감상을 말하거나 토론하는 문화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낳은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시 작품의 제목과 작가 이름을 모두 가리고 작품만 보도록 했던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2022년)를 기획한 부산현대미술관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작품에 대해 모른다는 불안감이 설명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도 하나의 감상 방법이며 예술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정보를 잘 가공해 떠먹여주는 설명은 너무 강한 자극일 수 있다”고 했다. 이 자극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과정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어 우려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홀로 작품을 마주하고, 마음대로 나의 감상을 말해보고 거기서 궁금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오래 남는, 온전한 나만의 감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도슨트 양성 교육을 해 온 한주연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시 해설에 대한 인기와 도슨트 프로그램의 확산은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한국만의 현상”이라며 “이런 관심을 잘 살려 미술관 교육과 해설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기관에서는 도슨트 양성 과정을 장기로 진행하며 스크립트 작성을 위해 시나리오 작가를 초청하는 등 외부 전문가의 강의를 듣기도 한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슨트가 미술관 소속 인력으로 전문화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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