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38화입니다.
2월 말 법원 정기인사가 발표됐습니다.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37화에서 언급했듯 대장동 재판을 진행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부장판사는 이준철 판사(51·사법연수원 29기)로 같지만 배석 판사가 김용석 문혁 판사로 변경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지난달 27일부터 공판 내용의 일부를 다시 진행하는 ‘공판갱신철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똑같은 풍경이 서울중앙지법 523호에서 반복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번 주 38화에서는 대장동 사건의 파생 사건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에 따라 이 재판을 다룹니다.
● 돈 박스 들고 나온 검찰… ‘투망식 기소’ 명명한 김용 측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는 4번의 공판준비기일을 마치고 7일 첫 공판을 열었습니다. 검찰은 대장동 민간 사업자들과 수년간 유착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천화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로부터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등을 거쳐 8억4700만 원(실수령 6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김 전 부원장을 기소했습니다.
7일 열린 공판에서 검찰 측과 김 전 부원장 측은 상반되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먼저 김 전 부원장의 변호인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검찰의 공소가 ‘투망식 기소’라고 언급했습니다. 검찰이 그물을 던져서 언제든, 누구든지 걸리라는 식으로 공소했다는 것입니다. 유 전 직무대리가 진술을 번복한 데 따라 허위 진술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변호인은 또 김 전 부원장이 유 전 직무대리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시점 네 차례가 모두 ‘2021년 4월’ 등으로 모호하게 제시돼있을 뿐 자세하게 특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전 부원장의 변호인은 “수많은 뛰어난 검사들이 투입돼 철저하게 수사를 했고, 유 전 직무대리와 김 전 부원장만 해도 몇 차례 소환조사를 했는데 아직까지 네 번 전달됐다는 것들 중에 한 번도 특정일을 지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 또한 이에 대해 “물론 관계인들의 진술이 명확치 않은 부분이 있어 재판부에서도 이해는 하지만 선택적으로라도 ‘이 날 또는 이 날 받았다고 보인다’고 하면서 신문이 이뤄져야 피고인 측의 방어권 행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은 재판 기간 동안 검찰이 유 전 직무대리의 진술과 증거 등을 통해 자금 수수 날짜를 특정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검찰은 서증조사 과정에서 남 변호사의 측근 이모 씨가 정민용 변호사에게 전달한 금액의 규모와 일정 등을 적은 메모를 공개하며 혐의 다지기에 나섰습니다. ‘Lee list(Golf)’라는 제목이 달린 이 메모장에는 ‘4/25 1’ ‘5/31 5’ ‘6 1’ ‘8/2 14300’ 등 날짜와 금액 등으로 추정되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검찰은 이에 따라 2021년 4~8월 김 전 부원장에게 정치자금이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스를 직접 들고 나와 직접 시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 변호사가 유 전 직무대리에게 돈을 전달할 때 사용했다는 골판지 상자를 직접 법정에 들고 나와 박스 부피가 크지 않고 현금 5억 원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도로 등에서 돈이 충분히 오갈 수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입니다. 검찰 측은 직접 쇼핑백에 적힌 상호명까지 언급하며 “검찰에서 타이틀리스트 골프공 쇼핑백과 발렌티노 슬리퍼 박스를 구해 1억 원을 넣어본 결과 (운반이) 가능함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부원장은 오전 재판 말미에 직접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저는 지난 2021년도 대선에서 그 중차대한 대선에서, 돈 자체를 요구한다는 게 얼마나 부도덕하고 어리석고 있으면 안되는 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10억, 20억 억대의 돈을 달라고 한 적, 얘기조차 꺼낸 적 없습니다.”
● “이재명 위해 산다”던 유동규, 마음 바꾼 사연
9일에는 유 전 직무대리에 대한 증인신문 과정이 진행됐습니다. 김 전 부원장 측에서 “유일한 직접 증거는 유 전 직무대리 진술 뿐”이라고 언급했듯 유 전 직무대리는 이 사건에서 남 변호사에게 돈을 받아 김 전 부원장에게 건넸다고 주장하고 있는 핵심 인물입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유 전 직무대리는 이날 이 대표에 대한 발언부터 자신이 돈을 받았던 상황의 경위 등을 아주 상세하게 쏟아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는 먼저 자신이 지난해 말부터 검찰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바꾸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나는 이재명을 위해서 산다’고 스스로를 세뇌했다”며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을 때 대법원에서도 패소하면 광화문에서 분신할 생각까지 했다”고 밝힌 유 전 직무대리는 자신이 태도를 바꿔 검찰에 진술하게 된 계기가 자신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태를 살피기 위해 이 대표 측이 보낸 ‘가짜 변호사’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돈을 전달한 상세한 정황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습니다. 2021년 4월 남 변호사에게 1억 원을 받아 자신의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힌 유 전 직무대리는 “골판지 박스 안에 고무줄 등으로 묶은 5만 원 권을 담아서 전달했다”고 말하는 등 돈을 담은 박스와 쇼핑백, 전달 방식 등을 검찰의 주신문에 응하는 과정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검찰과 김 전 부원장, 유 전 직무대리 측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1·2차 공판기일은 검찰의 주신문 종료와 함께 끝났습니다. 다음 공판기일로 지정된 14일부터는 21일까지 세 번의 공판에 걸쳐 유 전 직무대리에 대한 김 전 부원장과 정 변호사 측의 반대신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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