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군자동 진남관(국보 304호)은 왜구를 진압하고 평안한 남해를 만들기를 소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진남관은 1718년 이제면 전라좌수사가 중건할 당시 나무기둥이 70개 있었다.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조선시대 지방 관아 건물 중에서 가장 크다.
일제는 1911년 조선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전국 객사 건물을 개조해 공립보통학교를 세웠다.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조선의 정신문화를 말살하고 식민지 교육을 위해 일본식으로 개조했다.
진남관도 일제의 훼손을 피하지 못하고 여수보통공립학교로 바뀌었다. 진남관 정원에는 일본 향나무가 심어졌다가 1990년대 베어졌다. 진남관 정문 역할을 하던 2층 누각 망해루도 일제에 의해 철거됐다가 복원됐다. 진남관 기둥 70개 중 2개는 근·현대 시대 개보수 과정에서 제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거된 기둥 2개는 중심축이 아니라 뒤쪽을 받치는 것이었다.
진남관은 건물 뒤틀림과 지반하부 침식 등 구조적인 불안정으로 훼손이 우려돼 2013년 전면 해체 보수가 결정됐다. 여수시는 2018년 진남관을 해체하면서 17·18세기, 1960년대 등 3차례 보수 기록이 적힌 상량문을 발견했다. 진남관 보수공사는 2024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진남관은 해체 보수공사 과정에서 제거된 나무기둥 2개를 복원하고 낡은 나무기둥 8개를 교체했다. 중심축 나무기둥은 지름이 60∼80㎝에 달했다. 비중심축 나무기둥의 지름은 55∼60㎝였다. 소나무가 이런 두께를 갖기 위해서는 110∼200년을 자라야 한다.
여수시는 진남관 소나무 기둥 10개를 구하기 위해 산림조합중앙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교체된 진남관 소나무 기둥 10개는 강원 울진·삼척군에서 4년 정도 모은 것이다. 복원을 맡은 보수기술자 천모 씨는 “진남관 기둥을 국산 소나무로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진남관은 해체 과정에서 목재자재 6000개, 초석 70개, 기와 5만 장이 나왔고 복원을 하면서 최대한 다시 사용하고 있다. 여수시 관계자는 “문화재 복원의 특성상 예상치 못한 변수에 따라 공사 기간이 다소 지연됐다”며 “호국충절의 고장, 여수의 상징인 진남관을 안전하고 완벽하게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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