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휴가 비현실적” “공짜야근 우려”…‘주 69시간’ 손볼듯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4일 2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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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과 관련해 “법안 추진을 재검토하라”고 14일 지시했다. 고용부가 6일 개편안을 발표한 지 8일 만에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우려를 이유로 전면 재검토 수준의 법안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여론 수렴을 하고 난 뒤 정책 세부안이 조율돼야 한다”면서도 “(법안에 대한) 대대적인 재검토 지시가 나올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화하는 큰 틀은 유지하되 최장 주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게 된 내용은 백지화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고용부는 바쁠 때는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MZ세대를 중심으로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대통령실 내 MZ 행정관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나왔고, 이를 경청한 윤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다음달 17일까지) 입법예고 기간 중 근로자,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듣고 대국민 여론조사 등을 실시해 법안 내용 중 보완할 것은 보완해 나가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최대 69시간 근로’가 원칙일 정도로 해석되는 등 개편 방안을 두고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논의 자체를 원점에서 시작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주 최대 근로시간에) 상한선의 캡을 씌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우리 국민 대다수의 삶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주4.5일제 도입을 추진할 것”고 밝혔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 원칙에 대해 변함이 없다. 그런데 자꾸 ‘주 69시간 근로’라는 프레임으로 와전된다. 더욱이 MZ(밀레니얼+Z세대)세대가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얘기가 나오니 긴밀히 소통해 고칠 것은 고치라는 취지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초 정부의 입법 예고 법안 취지는 일하는 방식과 기업문화 혁신을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이 입법예고 기간 동안 여론을 더 수렴하라고 지시한 만큼 최장 주 69시간 근로가 가능하도록 한 대목이 수정될 수 있다고 시사한 것. 다만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정부로서는 (법안의) 큰 프레임의 변화가 없다. 대통령과 방금도 (소통)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 MZ “근로시간 개편안, 현실성 없고 퇴행적”
고용노동부가 6일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의 핵심은 현재 ‘주(週)’ 단위인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年) 단위로 확대하는 것이다. 근로시간이 너무 길어질 경우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정부가 개편안을 발표한 이유는 현재 기본 근로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으로 묶여 있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기업 현장에서 더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일이 많이 몰리는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나머지 3주 동안은 연장근로 없이 주 40시간만 일하는 식이다.

하지만 노동계와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개편에 대한 반발과 우려가 쏟아졌다.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는 지금도 일부 사업장은 사용자가 포괄임금제를 악용해 근로자의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일명 ‘공짜 야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직장인들 사이에선 “이미 주어진 연차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실정인데 ‘장기 휴가’는 현실성이 없다”는 불만도 나왔다. 주 7일 근무를 가정하면 1주일에 최대 80.5시간을 일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 정부 “주 최장 69시간 내용 조정 가능성”
고용노동부와 국민의힘은 14일 MZ세대를 비롯한 현장 근로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부는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다음 달 17일까지 청년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16일 근로시간 제도와 관련해 MZ세대 노조, IT 기업, 전문가와 토론회를 개최하고 현장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주당 최장 69시간 근로’ 부분을 조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주 최대 69시간까지 장기 근로가 만연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14일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몰아서 일을 시키고 나중에 쉴 수 있도록 자기개발의 시간을 주게 돼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등 근로자의 휴식과 관련된 부분도 수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근로자 건강권 보호 조치와 휴가 사용권을 지금보다 자세하고 강력하게 마련해 현장의 우려를 해소해 주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과로사조장법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며 “주 69시간제로의 퇴행이 아니라 주 4.5일제, 혹은 주 4일제가 노동의 미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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