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갑질에 한숨 쉬는 경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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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3월 16일 15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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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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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이 아이에게 ‘공부 잘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대놓고 비하하는 발언을 했어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 같은 경비노동자의 증언이 담긴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를 16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단체가 지난해 10월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노동자 5명, 청소노동자 1명, 관리소장 1명, 관리사무소 기전 직원 2명 등 총 9명을 심층 면접한 갑질 피해 실태가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9명 모두 고성·모욕·외모 멸시, 천한 업무라는 폄훼, 부당한 업무지시·간섭 등의 갑질을 경험했다.

일부는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채용했냐. 당장 바꾸라”는 폭언을 듣거나 경비초소에 불을 켜놓았다는 이유로 “너희 집이었으면 불을 켜놓을 거냐” 등의 말을 들어야 했다.

입주민과 갈등이 생겼을 때 해고 종용을 당하거나 근무지가 변경되기도 했다. 경비노동자 A 씨는 “입주민에게 차를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경비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며 관리사무소에 얘기해서 그만두게 하겠다고 협박한 경우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
노동자 9명 중 6명은 원청업체의 갑질에 시달렸다. 경비노동자 B 씨는 “관리소장 지시로 갑자기 정화조 청소를 했다. 분뇨가 발목까지 차오르는 곳에서 작업하고 나왔는데 독이 올라 2주 넘게 약을 발랐다”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일하다 지난 14일 극단적 선택을 한 70대 경비노동자도 ‘관리책임자의 갑질 때문에 힘들다’는 취지의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노동자가 가해자로 지목한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아파트 관리를 위탁받은 C 업체 소속이었다. 경비노동자는 C 업체가 경비 업무를 위탁한 D 경비업체 소속이었다.

관리소장의 갑질은 경비원과 같은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아 경비노동자는 관리소장을 신고할 수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계약 해지를 당할 수 있다는 극심한 고용불안 때문에 갑질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직장갑질119는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으로는 입주민이나 원청업체 관리소장으로부터 아파트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 적용 대상을 입주민, 원청회사 등 특수관계인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비노동자들이 입주민과 용역회사의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기간을 꼽았다.

조사 대상 9명 모두 1년 미만의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는 고용 형태였다. 경비회사에 고용된 경비노동자의 계약기간은 더 짧았다. 5명 중 4명은 3개월 단위로, 1명은 1개월 단위로 계약을 체결했다.

단체는 관련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직접 고용 구조로의 전환 △실효성 있는 공동주택 노동자 보호 체계 마련 △입주자 대표 회의 책임 강화 △갑질하는 입주민 제재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갑질119 임득균 노무사는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으로 갑질에도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입주민·관리소장 등의 갑질 방지 및 처벌 규정 강화와 고용불안 해소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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