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단속과 수사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마약 종류나 판매시기를 특정하지 못하면 기소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텔레그램 마약 판매의 경우 판매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종류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회 입법조사처가 이 달 발간한 ‘마약범죄 수사·기소·처벌에서의 쟁점과 과제’ 연구보고서는 마약범죄 공소사실 특정이 어렵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사가 피의자에 대한 공소를 제기(기소)해야 재판에서 유·무죄를 다툴 수 있다.
보고서는 다양한 마약을 수백건 이상 거래하는 기업화된 마약 판매상은 현실적으로 정확한 판매일시나 마약 종류를 알기 어려운데, 현행법상 일시·장소·방법에 관한 공소사실을 특정하지 못하면 공소가 기각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최근 마약 판매는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텔레그램 등을 통해 가상화폐로 이뤄진다. 텔레그램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메시지가 삭제돼 어떤 마약을 언제 판매했는지 객관적 기록을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특성이 있다.
이재인 인천지검 검사는 지난해 ‘형사법의 신동향’에서 “다양한 종류의 마약을 취급하는 특성상 마약상 본인도 어떤 마약을 판매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당사자가 전문 마약판매상임을 자백하고 대금이 확인돼도 마약 종류가 특정되지 않아 기소를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에 텔레그램과 암호화폐를 사용한 마약 판매는 마약 종류가 특정되지 않아도, 본인이 자백하고 계좌 등의 다른 객관적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가장 법정형이 낮은 마약류를 판매한 것’으로 간주하는 예외규정을 두자는 제안이 나온다.
다만 보고서는 “공소사실 특정 의무를 완화하더라도 피고인 방어권이 지나치게 침해되지 않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단순 마약 투약범의 경우에도 투약 시기가 특정되지 않으면 기소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모발은 사람마다 성장 속도에 편차가 커서 본인이 투약 시기를 정확하게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모발 감정만으로 특정해서 기소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모발 감정으로 마약 투약 시점이 1개월 내로 특정된 사건에 대해 ‘공소사실 불특정’을 이유로 공소를 기각한 바 있다. 마약류 범죄는 매 투약 시기마다 별개 범죄로 구성돼 이중기소 등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투약 시기 특정을 요구한 법원 판단에 대해 명백한 물증이 있음에도 범행일시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 게 합당한지 문제 제기가 있다”며 “공소사실 특정과 관련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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