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지난달 7일 오후 7시경. 퇴근을 앞둔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와 형사정책담당관실 등 형사법제 관련 부서가 발칵 뒤집혔다. 오후 4시 38분경에 온라인에 뜬 기사 때문이었다.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이 발부하기 전에 피의자와 검사 등을 심문할 수 있도록 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입법예고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로선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사의 밀행성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
문제는 두 시간 넘게 온라인에 올라온 이 기사를 대검 간부와 실무진 누구도 체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1만 검찰’의 수장이 이 기사를 가장 먼저 본 것.
그 주인공인 이원석 검찰총장은 옛날 상사들처럼 불같이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후배들에게 경어체와 존댓말을 사용하고 거의 말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아랫사람들로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질책하는 꾸짖음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아무도 모르고… 기사도 체크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유관부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이 미칠 영향과 대응 방안에 대한 보고서 등을 썼다는 슬픈 이야기. 이후 대검 각 과에선 언론 모니터링 담당자를 지정해 일종의 ‘당번’을 서게 하는 내부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 전형적인 ‘똑부’… “혼자만 행복” 내부 불만도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지명한 다음 날 제주지검장이었던 이 총장을 대검 차장검사로 임명했다. 대선이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이 일명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밀어붙이면서 내부 반발이 거세진 상황에서 김오수 당시 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시기였다.
그때부터 대검 간부들이 일이 너무 많아져 다음 인사만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의 스타일상 뭔가 생각나면 잊기 전에 그때그때 연락해 지시를 내리다 보니 간부들이 늦은 밤이나 주말에도 지시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랫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사는 ‘똑게(똑똑하고 게으른)’형이다. 이 총장의 단점도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형 상사의 단점과 유사하다.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지시할 게 많고 후배 검사들이 못 미더워 보일 수밖에 없다. 잔소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총장은 취임 이후 사적인 자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심한다. 그 대신 점심엔 각계각층의 명사들을 대검으로 초청해 강연회를 열거나 오찬을 함께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검찰에 대한 시각 등을 경청하기 위해서다. 최근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 소장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을 초청해 강의를 들었고, 이달 15일엔 김훈 소설가를 초청해 비공개 오찬을 함께 했다.
외부 인사 초청 뒤엔 검찰 내부망에 사진과 함께 총장 동정이 올라온다. 최근 만난 한 검찰 간부는 “동정 사진에서 총장님의 웃는 모습을 보며 직원들이 ‘총장님 혼자 행복한 것 같다’는 말을 우스개로 하곤 한다”고 전했다. 총장의 바쁜 일정 때문에 일부 직원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뼈 있는 말이다. 또 직원들이 몰라도 될 일정까지 굳이 공유된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총장 때는 없었던 일이다.
총장이 모든 기사를 다 볼 정도로 꼼꼼하게 읽고 언론에 민감해 직원들이 전임 총장 때에 비해 일이 많아졌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 매일 30분씩 직원들과 ‘칭찬 소통’… ‘부드러운 카리스마’
그럼에도 대검 내부에선 이 총장에 대한 ‘용비어천가’가 대부분이다. 한 대검 간부의 말이다.
“총장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전형적인 똑부형 상사라 같이 일하기가 너무 힘들지만 배울 게 많다. 솔선수범하는 데다 맞는 방향으로 맞는 말만 하니 따르지 않을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
이 총장이 업무 지시와 채찍질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매일 30분 정도 할애해 일선 검찰청에 전화를 하거나 단체 메시지방을 열어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검사뿐만 아니라 수사관, 실무관 등 모든 직원에게 해당된다. 우수 직원으로 뽑힌 직원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건강이 좋지 않거나 조사 등 힘든 일을 겪은 구성원에게는 따뜻한 말을 건넨다. 총장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없는 평검사나 수사관들이 처음에 연락을 받고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고 한다.
실제 그는 굉장히 자상하고 상냥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을 거쳐 검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그를 만난 사람들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랫사람에게도 존댓말을 쓰고 조곤조곤하며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한다. 다정다감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특히 공권력을 사용하고 단죄하는 검찰인 만큼 늘 겸손과 경청, 소통 등을 강조한다. 그가 총장으로 취임하며 강조했던 말이다.
“일하는 데 있어 최소한 법(法)에 맞게, 다음으로 세상의 이치(理致), 상식에 맞게, 마지막으로 사람 사는 인정(人情)까지도 헤아리는 겸허한 검찰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지난해 9월 16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45대 총장 취임식에서
● 민주화 항쟁·법복 보고 자란 ‘아인슈타인’
1969년 광주에서 태어난 이 총장은 동네 수재였다. 광주 지산동에 위치한 동산초를 다니는 동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초교 동창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유정 전 의원은 “우리 어머니 기억에 IQ는 이 총장이 전교 1등이었고 내가 2등이었다고 하더라”며 “학생 때 피부가 하얗고 귀여운 외모여서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고 반장도 도맡아 하며 총명했다”고 전했다. (외모 얘기가 나온 김에… 그는 자신의 적은 머리숱을‘셀프 디스’하며 유머 소재로 삼는다. 이 총장은 대학생 때 ‘개구리 왕눈이’ ‘미키마우스’ 등 귀여운 별명을 갖고 있었다. 요즘 누리꾼들 사이에선 ‘미니언즈’라는 별칭도 붙었다고 한다.)
동산초는 광주지법과 광주지검 등이 있는 법조타운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검사와 판사의 법복을 보고 자란 게 그가 공직자 중에서 법조인을 선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라는 게 지인들 전언이다.
동산초, 동성중을 졸업한 뒤 광주 동신고를 다니던 그는 고2 때 상경해 서울 중동고를 다녔다. ‘전라도 촌놈’이 서울 강남의 명문고에 들어온 것인데, 그는 전학하자마자 반에서 1등을 해 놀라움을 샀다고 한다. 당시 별명은 ‘아인슈타인’.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Einstein)의 이름이 하나의 돌(one stone)이라는 뜻이어서 ‘원석’과 같다는 것이다.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서울 친구들에게 피 흘리던 대학생을 숨겨준 일화 등에 대해 이야기해줄 정도로 정치적으로 조숙했다. 여느 호남 출신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
학생 시절부터 그는 이미 논어, 맹자, 장자, 한비자 등을 읽었다. 중국 역사와 한학(漢學)과 서예에 조예가 깊었다.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국어사전, 유사어사전 등을 늘 꼼꼼히 읽었고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썼다고 한다. 마르크스와 칸트 등 독일 철학과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독일어를 잘했고 이런 영향으로 그는 평검사 시절 연수 기회가 주어지자 독일에서 연수를 했다.
그가 대학교 1학년이 된 1987년은 6월 민주항쟁이 있던 해였다. 중동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87학번 동기로 단짝이었던 김동규 씨의 이야기다.
“(원석이가) 대학 다닐 땐 운동권은 아니지만 PD(민중민주) 그룹 선후배들과 교류가 많았다. 1987년 때도 명동에서 열심히 돌도 던지고(웃음) 학내에서 집회가 있으면 꼬박꼬박 참석해서 토론하고 그랬다. 기본적으로 그 친구는 민주화에 관심이 많았고 나보다는 훨씬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2학년까지는 거의 매일 정치 상황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남북통일, 국가와 정치의 존재 이유 등 정치·사회 분야에 대해 밥 먹으며 소주잔 기울이며 아침부터 밤까지 토론을 했다. 그러다 2학년을 마쳐가는 1988년 12월 원석이가 ‘이제 민주주의가 틀이 잡혀가는 것 같다. 나도 직업을 찾아봐야겠다. 사법시험 봐서 법조인이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경북 상주에 있는 절에 같이 들어가지 않을래?’라고 했고 그래서 상주에 있는 절에 가서 두 달을 같이 지내며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 총장은 시험에 빨리 붙은 것도, 그렇다고 늦은 것도 아니었다. 중간에 군 복무를 하며 일명 ‘방위’로 상병 제대했고 군 복무 후 고시 공부에 집중해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7기로 입소한 이 총장은 1996년 입소 후 학번은 5개, 나이는 네 살 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6반 A조에서 2년간 동고동락했다. 소년 급제한 한 장관이 17~20명이 있는 A조에서 막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을 가르쳤던 한 연수원 교수는 “그 시절부터 둘 다 총명하고 눈에 띄었다. 단 1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지도교수였던 조대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이 총장에게 판사 임관을 권유했지만 그는 검사가 됐다. 다음은 이 총장과 한 장관에 대해 다룬 필자의 최근 칼럼.
1998년 임관한 그는 서울지검 동부지청(현 서울동부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부산지검, 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법무부 등에서 근무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에서 2005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맡으면서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 사건 공소유지를 맡았는데도 혼자서 꼼꼼하게 추가 수사를 착착 진행해놨더라. 윗분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삼성 비자금 특별수사팀, 대검 연구관, 대검 수사지휘과장,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특수1부장 시절에는 2016년 법조 비리 의혹으로 번진 정운호 게이트를 수사했다. 당시 홍만표 전 검사장 등 전관 변호사들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검찰 고위층에선 ‘가장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이원석에게 맡겨라’라고 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 법조 비리 의혹 수사를 마친 뒤 한 달가량 현안 사건이 없을 무렵이었다. 당시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사7부에서 하고 있었다. 여론이 좋지 않았다. “왜 특수부에서 수사를 하지 않느냐”고. 불안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다고 하지 않든가. 결국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그를 불러 수사를 나눠 맡겼다. 그가 후배 검사들을 불러 놓고 했다는 말이다.
“과거 조선시대 등 옛날이면 이런 수사를 잘못하면 목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직으로 밀려나도 검사를 계속할 수 있지 않느냐. 우리는 거들기만 하면 된다. 슬램덩크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우리는 농구에서 왼손이다. 거들기만 하면 된다.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진실의 힘이 무섭기 때문이다.” - 취재 메모 중 -
결국 이 총장은 2017년 3월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뒤 구속했다.
이후 그는 여주지청장과 대검 해외불법재산환수 합동조사단장을 지낸 뒤 윤 대통령이 총장 시절 기획조정부장으로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다.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운 뒤에는 수원고검 차장검사와 제주지검장 등 검사장 자리 중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곳으로 좌천됐다. 하지만 정권 교체 뒤 대검 차장검사를 거쳐 전임 총장보다 7기수 아래 총장으로 발탁됐다.
● 비(非)법학 전공 첫 총장… 목계지덕의 고수
민주화 이후 21대 이종남 검찰총장부터 45대 이 총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유일한 비법대 출신 총장이라는 특징도 있다. 25명 중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 18명, 고려대 법학과 출신이 6명, 그리고 유일하게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이 총장이 있다. 민주화 이전엔 서울대 법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법학과, 고려대 법대의 전신인 보성전문 법학과, 일본 대학 등의 출신이 많았다.
이 총장은 정치학 전공자라는 이유로 검사가 되고 나선 선배 검사들에게 “나중에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 전 총리는 이 총장과 경기도 ‘광주 이씨’로 같은 종친 할어버지뻘 되는 분이라고 한다. 이 전 총리가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2007년경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마당에서 우연히 이 전 총리 부부를 만나 인사를 하고 덕담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전 총리가 “자네는 정치학 전공인데 왜 정치를 하지 않고 검사를 하고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총장은 이 전 총리에게 웃으며 “총리님은 법학 전공하셨는데 지금 정치를 하시지 않느냐”고 했다. 이 총장의 재치 있는 답변에 이 전 총리 부부는 활짝 웃었다고 한다.
이 총장은 전형적인 선비 스타일로 독서와 산책, 등산 등이 취미다. 매일 다독(多讀)한 뒤 걸으며 다상량(多商量)하는 스타일이다. 단벌 신사에 외모에는 관심이 없고 검소한 생활을 신념으로 여긴다. 실제 총장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이 총장 집에 가본 직원들이 다들 엄청 놀랐다고 한다. 집에 책이 많고 불필요해 보이는 물건이 하나도 없는 정갈함 그 자체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선비 집이 이랬을 것 같다. 미니멀리즘을 실현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장미같이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엄친아’ 이미지의 한동훈 장관과는 대조적으로 이 총장은 은은한 향기를 내는 난초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당초 실세 한 장관에게 휘둘려 조직 장악이 어려울 것이라거나 “총장의 공간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검수완박’ 등 위기에 몰렸던 검찰 조직이 이 총장을 중심으로 안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이 총장은 장자에 나오는 ‘목계지덕(木鷄之德)’처럼 나무로 만든 닭처럼 작은 일에 흔들림이 없고 교만함, 조급함 없이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목계지덕의 최고수 같다”고 평가했다.
이 총장 스타일상 검찰총장까지 한 사람이 ‘초선’ 의원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한 장관이 내년 총선에서 출마를 위해 법무부 장관에서 사퇴하거나 혹은 그 이후에라도 이 총장이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되거나 감사원장 등 다른 공직으로 진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그가 검찰총장 임기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그 길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원석 총장이 2017년 8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에서 여주지청장으로 발령이 난 뒤 어느 날, 당시 법조팀장이었던 선배와 함께 여주로 가서 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여주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만찬을 한 뒤 그는 서울로 돌아가는 우리를 버스터미널에 차로 데려다줬습니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배웅이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돌아가는 버스터미널에 들어와 버스에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극진한 예의를 차렸습니다. 차창 안에서 바라봤던 그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1도’도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겸손하고 신중하고 중용의 미덕을 갖춘 그는 검찰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신망이 두터운 사람입니다. 청문회에서도 야당이 결점을 찾기 어려워 보좌관들이 “실화냐”고 했다는 후문입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야권을 향한 계속된 검찰 수사로 야당 탄압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검찰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나마 이 총장이 있기에 ‘아니겠지…. 나오는 대로 수사하는 것이겠지’라며 이런 의구심을 덜 했던 형국입니다. 결과적으론 임기 1년 반 남은 이 총장이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검찰이 20일 국민의힘 하영제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정부 출범 1년 만에 야권만 수사한다는 비판을 다소 덜 수 있게 됐습니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한비자의 문구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승불요곡(繩不撓曲·먹줄은 굽은 것을 따라 휘지 않는다)’처럼 흔들리지 않는 검찰이 되길 바랍니다.
앞서 예고 없이 법정모독 <11화―번외편>을 쓰면서 ‘공정선거 지킴이’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어색한(?) 전당대회 개입 논란에 대해 썼습니다. <13화>는 ‘0선 중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여권 인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톡톡 튀는 스타일이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정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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