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3일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95회)을 받은 양쯔충의(楊紫瓊·61·사진) 수상 소감입니다. 그녀가 주연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올원)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등 오스카 주요 7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양쯔충은 1962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왕립무용원에 들어갈 정도로 발레에 재능을 보였으나 척추를 다치면서 꿈을 접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 불행이 또 다른 삶의 길로 인도하는 경우를 봅니다. 1983년 미스 말레이시아가 된 양쯔충은 홍콩 영화제작자 눈에 띄어 영화 ‘범보’(1984년)로 데뷔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됩니다.
양쯔충은 ‘예스마담’(1985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청룽(成龍)으로 대표되는 남성 위주의 홍콩 영화계에 ‘여성 주연의 액션 영화’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홍콩 영화산업의 지평을 확장시켰습니다. 이후 말레이시아계라는 편견 속에서도 ‘폴리스스토리3’(1992년)와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2000년) 등을 찍으며 세계적인 스타가 됩니다.
이번에 아카데미를 휩쓴 ‘에올원’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미국 이민 1세 에블린(양쯔충 분)이 주인공입니다. 에블린은 남편의 이혼 요구에다 사춘기에 들어선 딸의 반항, 심지어 세무 당국의 압박까지 받는 대혼돈의 상황과 마주합니다. 바로 그때 수만의 우주(멀티버스)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가족과 세상을 구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되면서 개봉 전 이미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양쯔충은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과감하게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그녀에게는 20여 년 동안 조연만 주어졌습니다. 감독이었던 대니얼스 듀오도 원래 청룽이 주연을 맡고 양쯔충을 부인으로 출연시킬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여성이 주인공이 되면 더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마침내 영화의 흥행과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이라는 쾌거를 한꺼번에 끌어내게 되었습니다.
양쯔충의 이번 수상 소감이 아시아계, 여성, 어머니를 강조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할리우드 진출 20여 년이 지난 60세에 비로소 첫 단독 주연을 맡은 그녀의 이번 오스카 수상은 영화 ‘몬스터볼’로 유색인종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핼리 베리 이후 21년 만의 기록입니다. 보트 피플(베트남 난민) 출신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키 호이 콴과 더불어 아카데미의 새 역사를 쓴 셈입니다.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보수적이라는 평판이 지배적인 아카데미의 변화만이 아닌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는 말이라 더 가슴에 와닿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