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 적응 사회로]〈4〉 청년들 “일-육아 병행 지원책 절실”
2030청년들 “자녀 1.22명 희망… 실제 합계출산율은 0.78명 그쳐
“안낳는 것과 못낳는 것은 달라, 정부 정책 근본적 재설계 필요”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에 미치지 못하고, 평균(1.59명)의 절반도 안 된다. 한국의 청년들은 아이 낳기를 단념한 것일까.
“당신은 아이를 몇 명 낳고 싶습니까?” 동아일보는 20∼22일 만 20∼39세 청년 6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설문조사에서 이를 물었다. 주요 저출산 대책(21개)을 상세히 설명한 후 청년들이 평가하도록 했고, 보건복지부 2030 청년자문단 6명을 대상으로 집단심층면접(FGI)도 실시했다. 일반 설문조사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진솔한 생각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조사에서 청년들이 낳고 싶다고 밝힌 자녀 수는 평균 1.22명이었다. 지난해 출산율(0.78명)에 비하면 0.44명이나 높은 수치다. 2022년 출생아 수 24만9000명에 대입하면, 지난해 청년들이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한’ 아이가 약 14만 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간극의 원인을 찾기 위해 진행한 FGI에서 청년들은 “아이를 원한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이유로 출산을 단념하는 청년이 없도록 저출산 정책이 재설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출산, 고령화는 이미 ‘뉴 노멀(new normal)’이 돼 적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2030 청년들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것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했다. 2006년부터 16년간 정부가 저출산 정책에 280조 원을 투입했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든 사회다. 이번 조사에 응답한 A 씨(33)는 “주 69시간 근로가 거론되는 것처럼 맞벌이 부부들은 본인들이 겪은 우리 사회의 힘들고 치열한 문화를 자녀를 낳아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응답자 B 씨(29)는 “(국가가) 아이를 ‘키워 주겠다’는 정책이 아닌, 부모가 일을 하면서도 ‘내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세상이 돼야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부모 대신 양육을 책임지는 데 초점을 맞춰 왔는데, 2030 청년들은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 ‘신혼부부 주거 지원’ 만족도 낮아… “소득 상한 높여야”
“합산소득 年7000만원 이하만 혜택… 맞벌이 부부 많은 현실 반영 못해” “아이 키우기 좋은 회사엔 세금 감면, 육아휴직 안쓰는 기업엔 페널티를”
동아일보는 국내 저출산 정책을 6개 분야(의료비, 현금, 보육, 주거, 일·가정 양립, 기타 지원) 21개 주요 정책으로 추렸다. 2030 청년 60명에게 각 정책의 핵심 내용을 설명한 후 “본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지”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6개 정책 분야 중 저출산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도 물었다.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복지부 2030 청년자문단에 집단심층면접(FGI)을 실시했다.
● “일·가정 양립이 가장 중요”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6.7%가 출산휴가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과 같은 ‘일·가정 양립 지원’을 가장 중요한 정책 분야로 꼽았다. 반면 어린이집 무상 보육과 아이 돌봄 서비스 등 ‘보육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청년은 전체의 8.3%에 불과했다. 청년들은 아이를 ‘키워주는’ 정책보다 ‘직접 키울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일·가정 양립 정책이 가장 중요하지만 실제 청년이 느끼는 만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 정책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에 대한 청년들의 만족도는 각각 10점 만점에 6.93점으로, 21개 정책에 대한 평균 만족도(6.66점)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었다.
출산휴가는 산모에게 90일, 배우자에게 10일까지 제공된다. 육아휴직은 부모가 각각 1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회사원 류태림 씨(30)는 “육아휴직은 ‘일하면서 아이를 기르기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일을 하든지, 아이를 키우든지 하라는 것인데 부모가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아이 2명을 키우는 김태진 씨(36)는 “정부에서 ‘아이 키우기 좋은 회사’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인증을 받은 회사에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자”고 제안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은 눈치 안 보고 휴가 등을 쓸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절실한 만큼 직원이 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업에 페널티를 부과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 “아동 입원비 할인이 가장 큰 도움”
21개 세부 정책 중 청년들로부터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정책은 아동 입원비 경감 정책(7.80점)이었다. 정부는 만 15세 이하 소아·청소년에 대해선 입원비 본인부담금을 75%가량 할인해주고 있으며, 특히 생후 28일 이내 신생아에 대해선 입원비가 전액 무료다. 설문에 응답한 A 씨(33)는 “아이를 원하는 부모에 대한 난임 치료비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금성 지원 정책에 대한 호응도 높았다. 0세 아이 1명당 월 70만 원(1세는 월 35만 원)을 지급하는 부모급여와 신생아 1명당 200만 원을 일시에 지급하는 첫만남이용권이 각각 3위, 4위를 기록했다. 현금 지원 액수를 높여 달라는 의견이 많았던 가운데 “유자녀 가구에 소득세를 대폭 감면해주는 방식은 어떠냐”는 제안도 있었다. 현재 연말정산에서 자녀 1명당 15만 원(셋째 아이부터는 30만 원)의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는데, 공제 금액을 늘리자는 주장이다.
● “주거 대책은 청년 현실 반영 안 돼”
반면 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자금 저금리 대출 등 주거 지원 대책은 만족도가 낮았다. 특히 ‘부부 합산 소득 연 6000만∼7000만 원 이하’라는 조건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기준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주당 40시간 근로자의 법정 최저 임금이 연봉으로 환산하면 2400만 원이 넘는 만큼, 맞벌이 부부 중에선 이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다자녀 가구 주택 특별공급 기준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최선아 씨(27)는 “다자녀 가구 지원은 대부분 자녀가 3명 이상일 때 해당된다”며 “합계출산율이 0.78명인 지금은 자녀가 2명만 돼도 ‘다자녀’ 지원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6개 정책 분야 중 덜 중요한 분야로는 전체 응답자의 75%가 ‘공과금, 편의시설 할인 등 기타 혜택’을 꼽았다. 이들 정책은 개별 정책에 대한 만족도 설문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프리랜서 김율 씨(30)는 “여러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현금 지원처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책에 ‘선택과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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