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체육 패러다임 바꾸는 히어로 여자 체육쌤 ‘원더티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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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교사 체육 공동체인 ‘원더티처’의 농구 동아리 ‘원더 T’. ‘원더티처’에서 학생 친화 농구 수업 발굴, 정보 교류를 위해 
모였다가 동아리까지 만든 여자 교사들이 21일 서울 구로구 경인고교 체육관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농구
 연습과 경기를 하며 학생들 모두가 공감하고, 학습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재밌는 농구 수업을 고민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여자 교사 체육 공동체인 ‘원더티처’의 농구 동아리 ‘원더 T’. ‘원더티처’에서 학생 친화 농구 수업 발굴, 정보 교류를 위해 모였다가 동아리까지 만든 여자 교사들이 21일 서울 구로구 경인고교 체육관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농구 연습과 경기를 하며 학생들 모두가 공감하고, 학습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재밌는 농구 수업을 고민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학부모님 대부분은 체육이 공부를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제 학생들에게라도 국-영-수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건 체육이라고 믿게 해주고 싶어요.”

서울 신목중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김혜린 교사는 오랜 침묵에서 벗어나 학교 체육 활동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했다.

체육 선생님 꿈을 이룬 김혜주 교사(서울 잠신중)도 체육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보고 싶은 의지가 크다.

“제가 학교 다닐 때 티볼을 연습하고 배드민턴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교무실로 불려갔어요. ‘너 공부할 시간에 뭐하냐. 대학 떨어진다. 당장 들어와라’고 꾸중을 들었죠. 운동만 하면 ‘너 선수할 거야’라는 말을 들었어요.”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의 94.2%가 권고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체육 수업의 부실이 근본적인 이유다. 뛰어 놀고 싶은 학생들의 욕구를 해소해줄 수 있는 체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운동의 묘미와 건강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수업은 힘들다. ‘공을 줄테니 뛰어놀라’는 식의 형식적 수업에서 특히 일부 여학생들은 소외되는 경향도 있었다.

체육 교사들마저도 교과 전문 역량이 정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여성 체육 교사들은 종목 연수 과정에서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 남녀 공동 연수 체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다 배우지 못했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민폐’가 된 것 같아 외로웠고 단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한계를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 학생 수준에 맞춰 발로 뛰어 찾는 체육 수업
이런 문제 의식에서 여자 체육 선생님들이 단단하게 뭉쳤다. 여교사들이 모여서 각자의 고민을 ‘우리의 고민’으로 놓고 학생 수준과 특성에 맞는 체육 수업을 연구해보자는 바람으로 하나둘씩 모였다. 홍유진(서울 과학고), 전해림(서울 덕성여고) 교사를 중심으로 2022년 여자 교사들의 체육 교육 공동체인 ‘원더티처(Wonder-Teacher)’가 생겨났다. 영화 제목으로 여자 주인공 히어로인 ‘원더우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현재 110명의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대부분 체육 담당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교사, 유치원 선생님들도 있다.

“수비 뒤로 돌아가.”

“공간을 넓혀보자.”

21일 저녁 서울 경인고 체육관 농구 코트가 쩌렁쩌렁 울렸다. 매주 화요일은 ‘원더티처’의 여교사 농구 동아리가 모이는 날이다. 농구 교육 전문성과 재미를 높이려고 연수 클래스를 만들었는데 동아리까지 생겼다.

경인고 남성 체육 선생님인 이윤희 교사의 재능 기부로 농구 동아리 ‘Wonder T’의 여교사들이 매주 경인고에서 농구 실습을 한다. 이들은 실습에서 체험해본 것들을 체육 수업에 적용해보고 있다. 이날도 30여명 가까이 참석을 했다.

5 대 5 경기에서 농구 이해도, 기술 실력은 각자 다르지만 패스가 5명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동료를 돕기 위한 스크린, 허슬플레이 등까지 나온다. 모두가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 교사가 만든 룰대로 움직인다. 득점자뿐 아니라 패스를 많이 하고 동료의 득점을 도운 사람도 높은 평가 점수를 받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잘하든 못하든 팀 플레이 위주로 흥미진진하게 공수가 오갔다. 28일에는 1990년대 농구 붐의 주역인 ‘오빠부대’를 이끈 ‘피터맨’ 김병철 전 오리온 코치로부터 쏠쏠한 팁을 전수받았다.

“모두가 잘해야 이기고 높은 점수를 받는 거잖아요. 학생들이 이런 농구를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친구들을 배려할 겁니다. 모두가 참여해서 즐겁고, 이기면 더 좋고, 못하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 가져도 되잖아요.”(김혜린 교사)

● 책과 휴대폰에 갇힌 한계 극복하게 해주고 싶어
학교 현장에선 바로 변화가 감지된다고 한다. 김혜린 교사는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최근 방과 후 농구 수업을 열었는데 영화 슬램덩크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 너무 많은 학생들이 찾아왔다. 면접까지 봤을 정도”라며 놀라워했다.

교사들은 ‘원더티처’ 활동으로 얻은 힐링의 기운이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으면 한다.

“학과 시험 때는 포기하면 백지 내면 끝이잖아요. 그런데 체육은 팀이 있고 동료가 있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끝을 낼 수 없죠. 사회에 대해서, 또 나에 대해 진짜 ‘매너’를 배울 수 있는 의미있는 체험인 것 같아요.”(김혜린 교사)

김 교사는 운동을 두려워해온 한 여학생의 심적 변화에 울림이 컸다고 말했다.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님하고 둘이 사는 여학생이었어요.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줄넘기 수업인데 줄이 머리에 맞는대도 넘지를 못하더라고요. 얘기를 해보니 그런 자신을 쳐다볼 친구들의 시선이 무섭다는 거였어요. ‘아니다. 못해도 친구들이 너를 포옹해줄 거다’라고 힘을 줬죠. 꾸준히 지도를 하니 지금은 야구도 하러 다니고 동아리에도 가입했어요. ‘체육으로 아이가 바뀔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저도 깜짝 놀랐어요.”

김혜주 교사는 “이제 체육 시간에 ‘무섭다’, ‘지친다’라고 말하는 학생이 없다. 친구들이 옆에서 응원하고 있으니 상대와 기싸움도 할 줄 안다. 스스로 책과 휴대전화에 갇혔던 한계의 벽을 체육으로 허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학생들이 체육대회에 나간다고 하면 나도 ‘원더티처’ 활동으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물은 몇 개, 양말은 몇 개 꼭 챙겨라’까지 알려줄 수 있다. 소소하고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교과서에는 없는 얘기”라며 웃었다.

우리 사회를 오래 지배해온 지덕체(智德體) 담론에서 건강한 신체를 기르는 ‘체’가 학교 교육에서 크게 위축된 시점에 여성 체육 교사들이 학교 체육을 살리는 막강한 구원 투수로 나서고 있다.

“지덕체에서 체덕지? 체덕지를 ‘체인지’(體仁智)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요? 체인지로 체인지(change) 해요.”

#에듀플러스#원더티처#체육 교육#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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