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법원의 한 재판부가 여성 피의자에 대한 형사재판을 진행하면서 ‘여성들로 배심원이 구성될 것 같나’란 언급을 하며 국민참여재판을 취소하고 일반 재판으로 전환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국민참여재판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 판사 사이에선 “국민참여재판은 기피 대상”이란 말이 나오며 실시 비율이 크게 줄고 있어 도입 취지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여성 배심원’ 언급하며 일반 재판 전환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도권 법원의 한 형사합의부는 지난해 12월 소대 병사에 대한 강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 소대장 A 씨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취소하고 일반 재판으로 전환해 진행 중이다.
당초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받아들였던 재판부는 첫 준비기일을 마친 뒤 변호인 측에 일반 재판 전환을 통보했다. “강요 여부 등은 법리적 영역으로 전문 법관이 판단하는 게 적절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종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A 씨 측이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 따르면 해당 재판장은 “원하는 대로 여성들로 배심원이 구성될 것 같나”라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A 씨의 변호인은 “재판부가 성별에 따른 심증을 내비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란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의 일반 재판 전환을 두고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참여재판법은 △피고인의 질병 등으로 인한 장기간의 재판 지연 △성폭력 피해자의 보호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일반 재판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의 결정에 따라 해당 재판은 현재 일반 재판으로 진행 중이다. 당시 재판장은 퇴직해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동아일보는 그에게 당시 발언의 취지 등을 물어보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 4년 만에 3분의 1로 줄어든 국민참여재판
법에 따르면 한국 국민이면 누구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대법원도 국민참여재판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일선 판사 사이에선 국민참여재판을 기피하는 경향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로 대법원의 국민참여재판 처리 현황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 실시 비율은 2017년 37%에서 2021년 11%로 크게 줄었다.
판사들은 가장 큰 기피 사유로 복잡한 절차를 꼽는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국민참여재판은 별도의 배심원 선정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며 “배심원이 선정된 후 검찰이나 피고인 측에서 기피 신청을 할 경우 배심원단 구성에만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심원의 전문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률적 판단과 국민 시각에서의 판단이 다른 경우도 있다 보니 판사들이 국민참여재판을 꺼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의 눈을 통해 더 믿을 수 있고 공정한 판결을 내놓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라며 “국민참여재판 절차를 효율적으로 개편하거나 관련 인력을 늘리는 등 활성화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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