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응급의료 영웅’ 잃고도 나아진게 없다[히어로콘텐츠/표류④]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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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下]수술 의사 없고, 법안은 스톱

‘어떻게 수술실마다 의사가 없을 수 있나.’

박종열 씨(39)는 왼 다리가 거무죽죽하게 죽어가도록, 이준규 군(13)은 뇌에 피가 가득 차오르도록 의사를 만날 수 없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구급차와 응급실에서 보낸 37일 동안 목격한 응급환자의 ‘표류’는 수술실을 지키는 의사 부족이 주된 원인이었다. 하물며 이 적은 수의 의사와 환자를 이어주는 시스템도 고장 나 있었다.

해마다 3058명의 의사가 배출된다. 그런데도 수술실은 텅 비어 있었다. 왜 의사들은 수술실을 떠나나. ‘수술 의사 대란’의 원인을 찾기 위해 2011년 신경외과를 택했던 전공의 111명이 12년이 지난 지금 어떤 의사로 일하고 있는지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여전히 응급 개두술을 활발히 하는 의사는 10명뿐이었다.

응급 개두술 의사를 따로 집계한 건 이들이 현장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의사였기 때문이다. 응급수술할 일이 잦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되지 않고, 적어도 3시간이 넘는 수술을 해야 하므로 체력적으로도 고된 일이다. 떠나는 의사가 많다.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도 병원 안에 이 의사가 없어서 사망했다.

그날의 운에 따라 환자가 수술 의사를 만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바꿀 대책이 왜 표류하고 있는지도 추적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2019년 설 연휴 기간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지키다 과로사한 윤한덕 센터장의 하드디스크를 입수해 분석했다. 하드디스크 안에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개선할 아이디어가 미완인 상태로 가득 담겨 있었다.

윤 센터장의 아내 민영주 씨는 3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남편이) 어떤 정책을 하나 추진하려고 하면 (정부와 국회, 의료계) 반대가 심해 못 하겠다고 힘들어했다”며 “생전 집에 오지도 않고 일만 해서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니 적극 말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 의사와 환자를 신속하게 이어줄 정책을 고민하고, 그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각계에 울분이 담긴 호소 편지를 썼다. 2012년 윤 센터장은 “전국 460여 개의 응급의료기관 중에서 응급환자나 그 가족이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응급실은 과연 몇 개나 되는가”라고 물었다. 11년이 지난 2023년, 그에 대한 답은 구급차를 탄 준규 군과 응급실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종열 씨의 슬픈 ‘표류’였다.
2019년 2월 설 연휴 동안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약 8㎡ 크기 사무실에서 밤샘 근무를 하다가 급성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사망하기 전 한 주 동안 그는 무려 129시간 30분을 일했다. 연휴 기간 누군가 생명을 잃을까 근무를 자청했던 그였다. 결국 그는 자신의 생명을 내준 셈이다.

2019년 2월 10일 열린 윤 센터장의 영결식.
윤 센터장은 생전 닥터헬기와 권역외상센터 도입 등 지금의 응급의료 시스템의 기반을 닦는 데 헌신했다. 그는 1994년 모교 전남대의 ‘1호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됐다. 4년간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 1998년부터 응급실에서 근무했다. 이때 응급의료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후 2002년 중앙응급의료센터 창립 멤버로 합류한 뒤 2012년 센터장이 됐다.

그의 영결식에서 당시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는 “윤 센터장은 개선의 노력조차 무의미하다며 버려진 응급의료 분야를 짊어지고 끌고 나갔다”며 “응급의료의 버팀목과 영웅을 잃었다”고 추도했다.

윤 센터장이 살다시피 한 센터 사무실. 이 2층짜리 벽돌 건물은 60여 년 전 한국에 병원을 지어주러 온 스칸디나비아 3국 의료진의 기숙사로 사용됐다고 한다. 현재는 중앙응급의료센터 사무실로 쓰인다.
윤 센터장이 남긴 하드디스크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 관계자에게 보낸 편지로 가득했다. 응급의료 대책이 정부의 관료주의와 국회의 게으름에 막혀 표류하는 과정이 그의 절망과 함께 기록돼 있었다.

● “응급환자 정보 공유는 빠르고 정확해야”
윤 센터장이 ‘응급 전원 개선방안.hwp’라는 문서를 쓰기 두 달 전인 2016년 9월, 전북 전주시에서 두 살배기 김민건 군이 대형 견인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인근 병원 14곳에서 “소아 응급 수술을 할 의사가 없다”며 민건을 받아주지 않았다. 도로 위를 헤매던 민건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7월 이를 계기로 윤 센터장이 주도한 ‘응급전원협진망’이 탄생했다. 종열 씨처럼 전원(轉院·병원을 옮김)해야 하는 응급환자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그런데 협진망이 생긴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응급실 의사들은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있다. 다리를 다친 종열 씨를 받아줄 병원을 알아보던 응급실 의사는 당시 전화를 2시간 가까이 돌리면서도 “응급전원협진망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어찌된 일일까.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서 한 직원이 119구급대의 환자 수용 문의 전화를 받으면서 한 손으로 환자의 상태를 A4용지에 적고 있다. 수원 일대에서 가장 많은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이 응급실에는 하루에만 100통 안팎의 이송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도 메모지는 금세 가득 찬다.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해 늘 허덕이는 응급실에선 협진망을 가동시킬 만한 여력이 없다. 응급실에 환자가 오면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와 투약, 처치 내용을 병원 자체 전산망에 입력한다. 협진망을 가동하려면 이를 다시 한번 입력하고 검사 결과 사진도 업로드해야 한다. 1분, 1초가 급한 응급실에서 이를 입력할 동기도, 시간도, 인력도 없었다. 이 협진망은 2022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 환자를 제외한 응급 환자 120명에게만 사용됐다. 사실상 사장된 상태다.

2년 뒤 윤 센터장이 작성한 문서에는 “(응급전원협진망을 활성화하려면) 환자의 차트(의무기록)를 다른 병원이 원격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렇게 되면 일일이 입력할 필요가 없다. 기술적으론 어렵지 않지만 국회가 이를 막고 있다. 개인정보인 환자의 진료기록을 협진망에 옮기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응급의료법에 ‘응급 시엔 환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 활용할 수 있다’는 조항만 있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에는 이 플랫폼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지난해 12월에도, 2021년 2월에도, 2018년 12월에 발표한 응급의료 대책에도 똑같은 내용이 담겼다. 관련 개정안은 2019년, 2021년 두 차례 국회에 발의만 된 후 논의되지 않았다. 계류 중이다.

● “응급전원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윤 센터장이 복지부 공무원에게 쓴 ‘○○○_전원지원센터.hwp’는 응급환자 전원을 도울 컨트롤타워를 신설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다. 2014년 그는 이와 관련된 글을 20건 이상 작성했다. 2012년 정부 조직 개편으로 응급환자 전원을 돕던 조직이 사라지면서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012년에 복지부 산하 응급의료정보센터가 소방청(당시 소방방재청)으로 통합됐다. 급히 병원을 옮겨야 하는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 원래는 응급의료정보센터가 병원을 찾아서 응급실에 알려줬다. 이 기능도 소방청에 넘어갔지만 유명무실해졌다. 화재 진압 등 소방청 본연의 업무에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응급실 의사가 일일이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돌리게 된 이유다.

윤 센터장이 제안한 전원지원센터는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라는 이름으로 2017년부터 운영이 시작됐다. 현재 응급의료 시스템의 구멍을 겨우겨우 메우고 있는 곳이 여기다. 다리 혈관이 막힌 종열 씨가 수술할 병원을 찾을 때 도왔던 게 바로 이 상황실이다.

24시간 직원 4~6명이 상주하는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 지난해 전원을 알아봐 준 사례는 5287건에 달한다. 종열이 응급 수술을 받을 병원을 찾을 당시 상황실은 78분 동안 병원 18곳에 전화를 돌렸는데 하루에 이런 사례가 15건씩 있는 셈이다.

설 당일인 1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응급환자가 전원할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 상황실 직원들은 상황실 바로 옆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도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 전원 요청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날 식사 직후 걸려온 전원 요청 전화에 한 직원은 양치하다 말고 칫솔을 문 채 일하기도 했다.
상황실은 대형 화재나 교통사고 등 재난 상황이 발생할 때 병상 조율까지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이후로는 재난 대응 업무가 3배가량 늘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국회는 올해 예산안을 심사하고 있었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재난 대응 투자를 공언했으나 결국 상황실 직원 수를 7명(상주 기준 1.4명) 늘릴 만큼의 예산(5억2500만 원)에만 합의했다. 기획재정부 예비심사에서는 그마저도 절반 이하로 깎였다.

●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윤 센터장이 다른 복지부 공무원에게 보내려 한 것으로 보이는 ‘○○○ 과장님께.hwp’ 편지에는 정부 정책을 환자가 아닌 관료와 병원 위주로 짜는 것에 대한 우려가 담겼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정부는 “윤 센터장의 생전 고민을 담아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19년 3월 그의 사후에 출범한 응급의료체계 개선 협의체에서도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입수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응급의료체계 개선 협의체 가운데 ‘현장·이송 분과 위원회’는 119구급차에 탄 환자를 골든타임 내에 병원으로 이송할 대책을 3개월간 논의했다.

윤 센터장이 2017년 열린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자료 공개 및 활용성 개선 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응급실 내원환자 통계인 NEDIS 구축도 윤 센터장이 앞장섰다. 생전 그는 통계 등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4차례의 대면 회의를 거쳐 어렵사리 내놓은 결론은 △구급대의 환자 이송을 병원 2곳이 거절하면 △시도 119종합상황실이 단체 메신저로 인근 응급실에 수용 요청을 보내고 △환자를 받겠다는 응급실이 없으면 지역에서 가장 큰 응급실로 일단 이송하는 방안이었다. 쉽게 말해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119와 지역 응급실이 모두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이라도 만들자’는 얘기였다.

그런데 최종 보고서에는 이 방안이 담기지 않았다. 마지막 논의에서 격론 끝에 제외됐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의료계는 119의 무분별한 이송을 우려했고, 119도 이송 환자의 정보를 병원 전산과 실시간 연동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면서 무산됐다”고 전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응급환자와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뇌출혈로 쓰러진 이준규 군(13)의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있던 지난해 12월 8일, 119구급대는 병원 8곳에 전화를 돌리느라 구급차를 출발시키지 못했다.

윤 센터장은 2012년 7월 복지부가 닥터헬기를 도입하자 소방청이 불쾌감을 표했다는 보도를 언급하며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부처가 사업을 하느냐가 아니다. 환자의 실익이 더 중요하다. 지금 논쟁엔 국민 입장에서의 고려는 없다”고 썼다.

그의 말대로 죽은 응급환자는 입을 열지 못한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윤 센터장의 헌신과 죽음을 쉽게 망각한 결과일 것이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표류: 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디지털 플랫폼 특화 기사는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생사의 경계에서 표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
(original.donga.com/2023/sos1)
응급환자와 구급대원들이 구급차에 갇혔던 75분을 숨소리까지 담은
‘강남에 응급실이 없었다’
(original.donga.com/2023/sos2)
응급의료 현장을 360° 영상으로 구현한
‘표류 속으로’
(original.donga.com/2023/sos3)

▽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취재: 송혜미 이상환 이지윤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임희래 인턴
▽인터랙티브 디자인: 곽경민 인턴
본 기사는 4월 1일자 동아일보 A1⋅2⋅3면에 실렸습니다.
본 기사는 4월 1일자 동아일보 A1⋅2⋅3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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