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노동이야, 이 바보야!” 돈보다 필요한 건 시간일지도[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일 14시 52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 직장 여성이 출근에 앞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다. 동아일보DB
한 직장 여성이 출근에 앞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다. 동아일보DB
“저는 여행을 너무 좋아하는데 남편이 아이를 갖자고 해요. 아이 낳으면 지금처럼 여행 잘 못 다니겠죠? 여행은 제 삶의 낙인데.”

최근 둘러본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라온 질문 글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의 임신, 출산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주는 글이 아닐까 싶다. 이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여행이라는 개인 취미와 비교해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됐다. 아이보다 내 취미와 그로 인한 낙이 더 중요하다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출산을 독려하고 싶다면 아이를 가진 뒤에도 여전히 부모가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현금성 지원과 같이 즉각적인 대책도 좋지만 생애주기 내내 육아의 시간과 여유를 만들어주는 장기적이고 항시적인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 일·육아 병행 핵심, 육아기 단축근로
이번 주 현 정부 들어 첫 저출산 대책이 발표됐다. 정부는 중점을 둬야 할 5대 핵심 분야로 돌봄 교육, 주거, 양육비용 지원, 건강과 함께 일·육아 병행을 꼽았다. 그리고 육아휴직 이용률을 높임과 동시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확대, 활성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2023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 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2015년 11월 이후 7년여 만이다. 동아일보DB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2023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 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2015년 11월 이후 7년여 만이다. 동아일보DB
흔히 일·육아 병행 정책이라 하면 가장 먼저 육아휴직을 떠올리는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단축근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만 8세 이하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직장에 신청하면 육아휴직 기간과 합산하여 최대 24개월까지 단축근로를 할 수 있는 제도다. 하루 1시간에 대해 정부가 통상임금도 100% 지원한다. 육아휴직은 육아를 위해 단기적이고 일시적으로 ‘일을 멈추는’ 제도하면 근로시간 단축제도야말로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육아휴직을 잘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는 순간부터 부모들은 막막해진다. 한국의 일반적인 출퇴근 일정 하에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조차 제 손으로 하기 어려운 탓이다. 어린이집 등·하원까지는 어떻게든 막는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건, 사고, 행사도 많다. 기관에 갔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다친다면 아이를 평상시보다 일찍 집에 데려와 돌봐야 한다. 하루 정도야 연차, 반차를 내서 대처할 수 있겠지만 아이가 하루만 아팠다가 마는 것도 아닐 텐데 연차, 반차를 연달아 내거나 갑자기 휴가를 쓰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기자도 평일 중에 반차를 내고 아이 영유아건강검진을 다녀오려 했으나 결국 반차를 내지 못한 채 무료검진 기간이 지나버려서 검진 기회를 날린 적이 있다. 얼마 전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총회가 있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대면 총회라 많은 부모들이 참석할 것이라 기대한 것과 달리 참석 부모가 한 반에 어림잡아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아는 엄마 몇몇에게 물어보니 “직장에서 오후 반차를 내지 못해서” 총회에 참석할 수 없었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육아기 단축근로가 활성화되면 이런 상황들에 대처할 수 있다. 집에 일찍 들어가기 위해 연차처럼 매번 회사의 허락을 구하며 결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단축근로 신청자, 육아휴직 7분의 1 수준
하지만 현재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이용자 수는 많지 않다. 육아휴직자와 비교해보아도 크게 적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공무원·교사 등을 제외한 일반 직장인(고용보험 가입자) 가운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 수는 지난해 1만9466명으로 같은 해 육아휴직자 수인 13만1087명의 7분의 1 수준이었다. 전년도 1만6689명과 비교해 16.6% 증가하긴 했지만 그조차 전년보다 2만532명, 18.6% 증가한 육아휴직자 증가폭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유럽의 경우 육아기 단축근로가 일상화돼있다. 독일은 12세 이하 자녀를 지닌 직원이 단축근로를 신청할 경우 사업자가 반드시 용인하도록 하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어린 자녀를 지닌 직원들의 단축근로는 일반적인 분위기다.

우리 정부도 이번 저출산 대책을 통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사용 가능 자녀 연령을 현재의 초등학교 2학년, 만 8세 이하에서 유럽 수준인 12세 이하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청 기간도 부모 1인당 24개월에서 최대 36개월까지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제도 확산을 위해 하루 2시간까지 통상임금 100%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육아기 재택, 유연근로 법제화 방안도 고민한다고 정부는 밝혔다.

문제는 홍보와 단속이다. 그동안에도 8세 이하 부모가 24개월까지 신청할 수 있었지만 신청자가 전국에서 2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사용을 독려하고, 사업자가 단축근로 신청을 용인하지 않는 등의 불법 상황을 발견하면 엄단해야 한다.

지난해 여름 윤석열 대통령이 한 어린이집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집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지난해 여름 윤석열 대통령이 한 어린이집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집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 돈으로 시간을 사야하는 부모들
육아기 근로시간이 줄어든다면 그에 따라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2012년부터 어린이집 재원 아동의 보육료를 전액 국가가 지원하는 무상보육이 시행됐지만, 실제 무상으로 보육하는 가구는 많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직접 어린이집 등·하원을 돕기 어려운 맞벌이 가구는 베이비시터를 별도로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보육 비용이 이중으로 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 부담을 줄이자고 정부가 어린이집의 운영시간과 운영반을 늘리고 학교와 지역사회의 돌봄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데, 근로시간 자체가 단축된다면 이런 노력도 필요 없게 된다.

단축근로가 늘면 부모들의 시간 여유도 많아질 것이다. 퇴근 후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육아에 헌납하는 게 두려워 출산을 꺼렸던 젊은 사람들도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온라인커뮤니티의 여성도 당장 여행까지는 못 가더라도 여행 계획을 짜거나 본인의 다른 취미 생활을 즐길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육아를 해보니 ‘돈보다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기자 역시 시간이 없어 결국 돈으로 남(아이돌봄인력)의 시간을 사와 돌봄을 맡기고 있다. 내가 버는 돈보다 내가 육아를 위해 사야 하는 시간의 비용이 더 비싸진다면? 기자도 일을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 근로시간 단축은 어쩌면 가장 쉽고 즉각적인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문제는 노동이야, 이 바보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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