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있는 종로구 인왕산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인근 주민과 휴일 봄나들이를 즐기던 시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산불로 축구장 20개에 이르는 산림 14ha(헥타르) 가량이 불에 탔다. 건조한 날씨로 2일에만 충남 홍성군, 대전 등 전국 34곳에서 동시다발적 산불이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관계부처에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산불 진화와 예방에 총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 “잠옷차림으로 주민센터 대피”
소방청에 따르면 2일 오전 11시 53분경 종로구 부암동 일대 인왕산 내 성덕사 약수터와 세진암 인근에서 불이 났다. 소방과 경찰은 즉시 입산을 통제했고 불길이 번지자 낮 12시 51분 경 인접 소방서까지 총출동하는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등 인근 주택가로 연기가 확산되자 120가구 주민을 인근 주민센터로 대피시켰다.
소방과 경찰 등은 2458명을 동원하고 헬기 15대, 장비 121대를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화재 발생 5시간여 만인 오후 5시 8분경 초진을 완료한 소방 당국은 헬기와 열화상 카메라, 드론 등을 투입해 늦은 시간까지 잔불을 진화했다. 소방 당국은 화재를 완전히 진압한 후 방화 또는 실화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종로구 부암동 주민센터에 잠옷 차림으로 대피한 김모 씨(58)는 “산불을 보고 심장이 뛰어 집에도 못 돌아갈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포근한 날씨에 봄나들이를 나왔던 시민 중 일부도 긴급 대피했다. 인왕산 자락에 있는 목인박물관을 찾았다가 부암동 주민센터로 급하게 대피한 박혜자 씨(73·서울 용산구)는 “박물관 입구에 도착할 즈음 불길이 치솟으며 연기가 났고 얼굴에 화기가 느껴졌다”고 했다. 개미마을 주민 김재식 씨(82)는 “다리가 불편해 집에 있는 통장만 겨우 챙겨서 나왔다”고 말했다.
● 2일에만 전국 34곳에서 산불
이날 인왕산을 포함해 전국 34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충남 홍성군이었다. 오전 11시경 서부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밤 늦게까지 산림 300ha 이상을 태웠다. 인근 민가 6채와 축사 1곳, 양곡사 사당이 불에 탔고 인근 주민 100여 명이 서부초등학교와 서부면 누리센터 등으로 대피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산림당국은 초당 11m에 달하는 강한 바람으로 진화에 어려움이 계속되자 오후 1시 20분경 인접 지역의 가용 가능한 소방 인력과 장비를 모두 동원하는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산림청과 충남도 소방당국은 헬기 18대와 장비 67대, 소방인력 1384명을 동원해 밤샘 진화 작업을 펼쳤다. 세종과 충북, 경기지역 소방차량도 동원됐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오후 7시를 기해 충남도청 전 직원 동원령을 내렸다.
정부는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산불 추가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기상청은 지난달 25일부터 2일까지 9일째 건조 특보를 발령한 상태였다. 2일에는 서울 경기 강원 충청 경북 등에 건조 경보, 그외 전국 대다수 지역에 건조 주의보가 내려졌다. 기상청 관계자는 “강수가 예보된 4일까지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기가 매우 건조하고 특히 경상권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 것”이라고 밝혔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홍성=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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