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송파소방서 잠실119구급대 소속 김재원 반장이 환자를 이송하면서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길을 터 달라’고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은 그간 반복해 온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과감한 실행 방안은 없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그 기본계획 일부를 고쳐 써 봤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26명의 표류 환자와 100명이 넘는 현장 의료진과 구급대원을 심층 인터뷰하고 내린 결론이다.
● 현장과 동떨어진 정부 대책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배병인 씨(40)는 지난해 12월 17일 경북 안동시에서 교통사고로 골반뼈가 산산조각 났다. 28분 만에 안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 병원을 포함해 인근 병원 7곳에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었다. 다른 병원 3곳은 의사는 있지만 이미 다른 환자를 수술 중이라고 했다. 배 씨는 다친 지 5시간 35분이 지나서야 약 220km 떨어진 병원으로 옮겨졌다.
배병인 씨가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골반뼈를 이어붙이는 수술을 받은 후에 찍은 엑스레이 사진. 배 씨는 경북과 경남에 있는 대형 병원에서 모두 거절 당하자 “내가 사는 곳에서 못 하는 수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수술 의사 부족은 표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였다. 응급환자는 구급차→응급실→수술실의 순서로 막힘없이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수술실에 의사가 없으면 각 단계가 꽉 막혀 환자가 거리를 떠돌게 된다.
복지부는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순환당직제’를 제시했다. 예컨대 뇌출혈 응급 수술이 가능한 의사를 월요일엔 A병원이, 화요일엔 B병원이 상주시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수술 의사 자체가 부족한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일 뿐이다. 권역외상센터를 둔 일부 병원이 사지 절단을 막을 혈관 수술 의사조차 못 구하는 형편이다.
설 전날인 올해 1월 21일, 배병인 씨가 부산 해운대구의 한 병원 복도에서 목발을 짚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수술까지 필요한 중증 소아 환자를 24시간 진료할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전국 8곳에서 12곳으로 늘린다는 대책도 마찬가지다. 이미 지정된 센터 8곳 중 일부도 수술 의사를 못 구해 문을 닫을 판이다.
올 1월 1일 오후 8시 반경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앞에 대기 환자들이 몰려 있다. 차로 50분 걸리는 경기 의정부시에서 환자를 싣고 온 119구급차도 눈에 띈다. 결국 응급 수술에 대한 보상을 대폭 올리거나 중증 응급환자 수용률을 상급종합병원 평가에 반영하는 등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검사와 경증 진료에 투입되던 건강보험 재정을 응급 수술로 끌어와야 한다. 응급 수술비가 싸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짜인 현행 ‘상대가치 점수제’도 손봐야 한다. 정책 수혜자를 줄이는 작업이다 보니 역풍을 우려한 정부와 정치권은 이 개혁을 미루고만 있다.
● 119-응급실-수술실 실시간 소통해야
응급환자가 길에서 헤매는 시간을 1분이라도 줄이려면 치료 가능한 병원을 한 번에 찾을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난달 19일 대구에서 벌어진 17세 여학생 추락 사망 사건에서는 그 시스템의 부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구급대는 병원이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상황인지 모른 채 여러 응급실을 떠돌았고 상황실은 부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이번 복지부 대책엔 “119구급대가 태블릿PC에 입력한 환자 정보를 이송이 예정된 병원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응급환자들이 이른바 ‘구급차 뺑뺑이’를 겪는 점을 감안하면 환자 수용을 문의하는 단계부터 환자 정보를 공유해야 빠른 이송이 가능하다.
1월 20일 경기 시흥소방서 구급대 이준호 반장이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에 전화를 걸고 있다. 갑자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12세 남자 환자에게 수액을 맞혀도 될지 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지도 의사에게 물어보기 위해서다. 119 이송 중 환자 정보 교환은 이처럼 주로 전화로 이뤄지고 있다. 지역마다 병원 간 전원(轉院)을 돕는 상황실을 추가로 설치한다는 대책은 실현될지 미지수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마저 인력 확충 예산이 깎여 나갔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 상황실 설치에 쓸 예산이 올해는 없고 내년에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토로했다.
● 중증-경증 응급실 나눠야
119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경증 환자들도 표류를 일으킨다. 지난해 12월 19일 낮 12시 21분,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 심정지 환자는 심폐소생술이 1분 늦을 때마다 생존 가능성이 7~25%씩 급격히 낮아진다. 그런데 이 환자를 구하러 간 건 차로 10분 거리에 있던 송파소방서 잠실119구급대였다. 더 가까운 구급대들이 전부 ‘가래가 많이 나온다’거나 ‘발이 욱신거린다’는 119 신고를 받고 출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북새통 응급실도 골든타임을 잡아먹는 주범이다. 대형 병원 응급실은 저녁마다 대기 환자로 북적이지만 이들은 3명 중 2명꼴로 소형 응급실에서 치료받아도 되는 경증 환자다. 기자가 응급실을 취재하던 중에 ‘가방을 오래 쥐어서 손바닥이 하얗게 됐다’며 진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7시경 충남 서산시 서산의료원 지역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가 3대 줄지어 서 있다. 이날 당번이었던 신재복 센터장은 87세 패혈증 의심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랴, 팔꿈치 관절이 빠진 5세 여아를 치료하랴 바빴다. 그 와중에 경증 환자가 몰려들어 대기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무 증상도 없는 사람이 반복적으로 구급차를 부르거나 대형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면 큰 비용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됐다. 현재 경증 환자가 대형 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때 받는 불이익은 응급의료관리료를 약 4만 원 더 내는 것 말고는 없다. 일본은 구급대가 경증 환자의 탑승을 거절할 수 있고, 비응급 환자가 대형 병원 응급실(고도구명구급센터)을 이용하면 수십만 원에 해당하는 진료비를 물린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표류: 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디지털 플랫폼 특화 기사는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 재원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정책 뒷받침이 필요하다. 경증 환자는 본인 부담을 늘리고 응급 의료가 원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 해야한다. 이번에도 또 변화없이 지나가면 수많은 환자가 절망할 수 밖에 없다.
동아일보 에디터
선택과 집중이라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2023-06-25 07:45:12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되는 현실..좌파들을 지지한 댓가로다
2023-06-24 16:25:02
일본은 구급대가 경증 환자의 탑승을 거절할 수 있고, 비응급 환자가 대형 병원 응급실(고도구명구급센터)을 이용하면 수십만 원에 해당하는 진료비를 물린다.
2023-06-24 12:04:51
저런 세끼는 손바닥 껍질을 벗겨 버려야 한다.
2023-04-04 08:27:21
한방치료에 들어가는 의료보험 일부,,, 전체 수술비보다 훨씬 더 많은 약국 조제료... 이것만 조정해도 수술여건은 훨씬 나아집니다.
2023-04-04 06:57:42
모든 사이비 집단들이 그자체가 범죄 조직에 불가 합니다. 교주들과 주변 수뇌부들 욕구 충족을 위해 종교라는 포장지를 씌웠을 뿐~그중에도 사이비 신천지범죄집단들은 점 조직 형태로 이뤄진 아주 치밀한 범죄집단 입니다. 이들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행한 범죄 조직 입니다.
2023-04-03 20:58:01
개업의사를 종합병원에 투입해라.?? 잘도 하갰다..ㅠㅠ
2023-04-03 20:21:17
미국에서, 26년전 공휴일 아이 눈위가 1센티 남짓 찢어져 피를 흘리기에 급히 응급실을 찾아갔더니 의사는 한두바늘 대충 꾸메고는 웬 이런 일로 오냐는 반응이라 황당했고, 그 다음 또 치료비가 의료보험임에도 몇달에 걸쳐 100만원 상당이 청구되어 기절! 지금 물가로 치면 한 2백만원 상당되었을거임.
2023-04-03 18:20:35
의대 정원을 지금의 배로 늘려라. 보건부는 뭐하고 있나? 그동안 의사협회 밥그릇 대변부 역할 했다. 의사수 늘리면 다 해결된다. 저자들은 수가 올리는것이 우선 이라는데 속지마라.
댓글 18
에디터가 추천하는 댓글!
2023-04-03 09:48:20
건강보험 재원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정책 뒷받침이 필요하다. 경증 환자는 본인 부담을 늘리고 응급 의료가 원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 해야한다. 이번에도 또 변화없이 지나가면 수많은 환자가 절망할 수 밖에 없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추천 많은 댓글
2023-04-03 07:35:26
좋은 기사 입니다. 윤대통령과 보건복지부에서는 현실적 대책을 세워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응급실 근무 의사와 간호인력에 대한 수당도 파격적으로 대폭인상 해서 동기유발을 해줘야 합니다. 안그러면 인력수급이 어려울 겁니다.
2023-04-03 07:49:50
외국처럼 개업가 의사들을 종합병원에 근무할수 잇는 시스템 만들어라. 굳이 당장 의사수 늘리지 않아도 된다. 힘들어서 그만두었던 분야를 개업의사들이 조금이라도 도우면 될텐데. 복지부에서는 아예 그런 시도조차 안하니..
2023-04-03 09:59:00
보건복지부 국개의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자기아이들이 사고 났다고 생각하고 대처해법을 내야한다 그런데 그닥 사명감이... 국개의원들은 말할것도 없고.. 시스템이 없다니 놀랍다 국개의원 놈들이야 급하면 병원장 한테 전화해서 해결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