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정자교 붕괴돼 보행자 추락
숨진 여성, 미용실 출근중 참변
통행량 많은 곳… “어이없는 참사”
“점검-보수 형식적 아닌가” 지적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마치 영화처럼 멀쩡했던 다리 한쪽이 무너져 내리더군요.”
5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정자교 붕괴 사고를 목격한 40대 여성 김모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그는 “매일같이 오가는 다리가 맥없이 무너져 내린 걸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오전 9시 45분경 정자교 총 108m 구간 중 북측 보행로 50m가량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가드레일과 이정표 등도 5m 아래 탄천으로 추락했다. 차로는 붕괴하지 않았지만 이 사고 당시 정자교 위를 걷던 김모 씨(40·여)가 아래로 떨어져 숨졌고, 남성 A 씨(27)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A 씨는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보행로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 피해자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에 붕괴 조짐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20년 경력의 미용사 김 씨는 사고 당시 예약 손님을 받기 위해 정자역 인근 미용실로 출근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빈소가 차려진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오후 5시 반경 도착한 김 씨의 어머니는 “말도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며 오열했다.
탄천 위로 아파트 대단지와 정자역 및 상가 밀집지역을 연결하는 정자교는 평소 통행량이 많은 곳이어서 인근 시민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한 60대 남성은 “무너진 교량 밑으로 매일 산책하는데 오늘은 비 때문에 쉬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아찔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남시와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안전점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자교의 차량 및 보행자 양방향 통행을 차단했다.
정자교는 1993년 완공된 왕복 6차로 교량이다. 그런데 사고가 나기 불과 4개월 전 정기점검과 보수공사가 이뤄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점검과 보수가 형식적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부터는 2년마다 받는 정밀안전검사도 진행 중이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정자교 정기안전점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8월 29일부터 11월 26일까지 89일 동안 진행된 정기점검에선 “현재 구조물의 안전성에 위험을 초래할 만한 손상이나 중대 결함은 확인되지 않아 정밀안전점검 또는 정밀안전진단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과 함께 ‘양호(B)’ 등급이 부여됐다.
분당구 관계자는 “정기점검에 앞서 2021년 2∼5월 정밀점검을 진행한 결과 교량 노면에 0.3mm 이상의 균열이 발생하는 등 일부 구간에 보수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보통(C)’ 등급을 받았다”며 “이에 따라 지난해 8∼12월 정기점검과 동시에 보조재로 노면 균열을 메우는 보수공사가 진행됐다”고 했다.
경찰은 “아직 교량 붕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많은 비가 내리며 지반이 약해져 붕괴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차량 통행로는 멀쩡한데 보행로만 무너진 걸 보면 교량 내부에서 철근과 시멘트 부착이 잘 안 돼 붕괴한 것으로 보인다”며 “시공상 문제가 있었지만 외관 위주로 점검 및 보수를 진행해 내부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한편 5일 오후 정자교 인근에 위치한 왕복 4차로의 불정교에서도 보행로 일부 구간의 침하 현상이 발견돼 양방향 운행이 통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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