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국내 첫 여대 축구대회 현장 찾아가보니
서울 5개 여대, 스포츠 교류전 개최… ‘FC 숙명’이 대회 첫 우승 차지
“운동장 없어 컴컴한 공원에서 연습”… 자치구 여성 축구단 운영도 늘어나
‘환갑 골키퍼’, 24년째 활약하기도… 지원 부족에도 여성 축구인 ‘꿋꿋’
《축구와 사랑에 빠진 여대생들
최근 축구를 직접 즐기는 여성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서울 지역 5개 여자대학 소속 축구동아리가 참가하는 ‘제1회 한국여자대학 스포츠 교류전’이 개최됐다. 여자대학 학생들만 참가하는 축구대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제 인생의 8할은 축구입니다. 축구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레고, 다음 날 훈련할 생각에 신나서 밤에 잠이 안 올 때도 있어요.”
성신여대 축구 동아리 ‘FC 크리스탈즈’ 선수 박정현 씨(22)는 지난달 31일 열린 제1회 여자대학 축구대회 경기 출전을 앞두고 축구화 끈을 동여맸다. 1년 전 축구 동아리에 참여한 박 씨는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했지만 ‘여자애가 무슨 축구냐’는 핀잔을 많이 들어 축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며 “요즘은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여성 축구 인기도 높아져 축구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최근 직업과 연령을 불문하고 축구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마스크 착용 의무도 사라지면서 축구, 풋살 등 단체 스포츠가 다시 인기를 모으는 중이다. 여기에 여자 축구팀끼리 경쟁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여대는 물론이고 서울시 각 자치구에서 여성 축구단을 운영하는 곳들이 확산되고 있다.
● “남자 축구만큼 박진감 넘쳐요”
박 씨가 이날 참가한 대회는 한국여자대학총장협의회(회장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 주최로 열린 ‘제1회 한국여자대학 스포츠 교류전’. 서울 시내 5개 여대(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가 처음으로 연 축구대회다.
첫 경기 시작 2시간 전인 오전 11시. 삼삼오오 팀 유니폼을 갖춰 입은 ‘선수’들이 서울 노원구 서울과학기술대 종합운동장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운동장 곳곳에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경기장에 입장한 선수들은 익숙한 모습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드리블 연습을 했다. 표정에서는 진지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묻어났다.
대회는 5개 대학이 2개 조로 나눠 A조(덕성, 숙명)와 B조(동덕, 서울, 성신)가 각각 경기당 전·후반 15분씩 총 30분간 맞붙는 리그전으로 진행됐다. 각 조 1위가 결승에서 맞붙는 방식이다.
첫 경기는 덕성여대와 숙명여대.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양쪽 응원단은 선수들을 향해 “잘한다 숙명”, “덕성 파이팅” 등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기념비적인 첫 대회 첫 골의 주인공은 숙명여대였다. 숙명여대 응원단은 골이 확인되자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다. 덕성여대 응원단은 이에 질세라 응원가를 부르며 선수들에게 기운를 불어넣었다.
경기는 손에 땀을 쥐는 박빙 양상으로 전개됐다. 최종 결과는 1―0, 숙명여대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를 관람한 대학생 이윤호 씨(24)는 “평소 축구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여자 축구가 이렇게 박진감 넘칠 줄 몰랐다. 앞으로는 기회가 되면 여자 축구도 자주 챙겨 볼 것”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승부 끝에 첫 대회 우승은 숙명여대 축구 동아리 ‘FC 숙명’이 차지했다. 숙명여대는 덕성여대와의 조별리그에서 1골을 넣은 데 이어, 성신여대와의 결승전에서 2골을 넣으며 탄탄한 실력을 과시했다.
● 국가대표 못지않은 선수들의 열정
대회에 출전한 여대생들은 축구에 대한 열정만은 국가대표 못지않았다.
동덕여대 축구팀 ‘동덕 FC’ 소속 김채완 씨(23)는 팀 내에서 연습벌레로 통한다. 김 씨는 “대학 축구 동아리뿐 아니라 지역 축구 동호회 활동까지 하며 주 10시간 이상 훈련 중”이라고 했다. 김 씨는 평소 수업 쉬는 시간이나 이동 시간에도 틈틈이 축구 선수 동영상을 찾아보며 기술을 연습하고 따라 해본다. 김 씨는 “요즘 가장 열심히 연습 중인 건 손흥민 선수의 ‘헛다리 짚기’ 기술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몇 주 더 연습해 반드시 내 주특기 기술로 만들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대회에서 MVP를 차지한 FC 숙명 주장 강서연 씨(20)는 “학교에 축구 연습할 운동장이 없어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공원에서 혼자 연습을 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 우승해 기분이 좋다”며 “앞으로 이런 대회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2년 전만 해도 축구 동아리 모집할 때 경쟁률이 미미했는데 올해는 경쟁률 3 대 1이 넘었다”며 “최근 높아진 여자 축구 인기를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학생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아쉽게 2연패로 탈락한 서울여대 축구 동아리 ‘SWU FC’의 공격수 김하늘 씨(22)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았지만 남학생만 선발하던 축구부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김 씨는 “남자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며 테스트를 받고 입단했지만 결국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김 씨는 “친한 친구들과 한마음으로 연달아 두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고 말했다.
● 직업, 연령대 불문하고 인기
최근에는 여대생뿐 아니라 직장인, 주부, 환갑을 앞둔 장년 여성까지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축구를 즐기는 모습이다. 서울시의 경우 각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여성 축구단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1월 서울 서대문구가 운영하는 여성축구단에 가입한 주부 박수진 씨(42)는 최근 축구의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박 씨는 주 3회 훈련에 참여하고, 자신의 장단점을 축구 일지에 쓰면서 실력을 키우고 있다. 박 씨는 “아들(10)이 축구를 하는데 경기를 보다 보니 직접 뛰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저녁마다 아들과 축구 연습을 한다. 박 씨는 “필라테스처럼 혼자 하는 운동보다 축구처럼 여럿이 뛰는 활동적인 운동이 좋다. 팀플레이를 하면서 팀원들끼리 끈끈한 우정도 다질 수 있다”며 웃었다.
20년째 서대문구 여성축구단 감독을 맡고 있는 김우석 씨(47)는 “요즘 여성축구단에 지원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며 “2년 전과 비교하면 지원율이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마포구 여성축구단에선 24∼65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선수가 활동한다. 이귀례 회장(60)은 1999년에 마포구 여성축구단 문을 연 창단 멤버다. 24년째 수문장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며 받던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기 위해 시작한 축구선수 생활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은 “그라운드에 있는 축구공을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뻥뻥 차다 보니 어느새 축구에 푹 빠지게 됐다”며 “상대편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찬 공을 온몸을 던져 막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은 직접 해본 사람만 알 것”이라며 웃었다.
마포구 여성축구단 멤버는 약 60명. 7년째 축구단을 이끌고 있는 한창윤 감독(47)은 “회장님을 중심으로 연배가 있는 선수들이 젊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독려하는 걸 보면 뿌듯한 마음”이라며 “스포츠를 즐기는 마음은 남자든 여자든 다를 게 없다”고 했다.
● 열악한 환경에도 꿋꿋한 선수들
국내 여자 축구는 1946년 당시 서울 종로구에 있던 중앙여중(현재 서대문구 소재)에 축구부가 창단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한 끝에 2010년 여자 U17(17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이 우승하는 등 최근 들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여성 축구단도 많아졌지만 여자 축구 프로리그가 열리는 유럽 국가에 비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더구나 2019년 12월 대한축구협회가 여성 축구인들의 염원이던 2023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유치 신청을 철회하면서 새로운 동력을 찾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마포구 여성 축구단의 김리안 씨(34)는 “손흥민 선수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여자 축구팀과 손 선수가 단합대회라도 한번 열어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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